[데스크에서] 설민석이 차라리 낫다
평소 그의 강의 마무리처럼 깔끔하고 명쾌하긴 했다. ‘스타 강사’로 이름난 설민석씨는 최근 잇따라 강의 내용의 사실 오류를 지적받았고, 지난 29일엔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의 52%가 표절이라는 지적이 불거졌다. 이날 그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저의 과오”라며 표절을 인정하고 모든 방송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유명인이 남의 글을 베껴 학위 논문을 쓴 일은 치명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더 배우고 공부하겠다”는 그의 말은 훗날 재기(再起)할 여지를 남긴 반성으로 보였다. ‘국민 언니’란 말을 듣던 스타 강사 김미경씨도 2013년 석사 논문을 표절했다는 지적을 받고 방송 출연을 그만뒀다. “내가 잘못했고 무지했다”고 밝힌 김씨는 이후 방송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애초에 대중이 설씨와 김씨에게 열광한 것은 그들이 학위 과정에서 얻은 전문성보다는, 강의 내용을 듣는 이 귀에 쏙 집어넣어 감동을 줄 수 있는 탁월한 전달 능력 때문이었다고 봐야 한다. 강의의 질(質)보다 ‘예능감’을 우선시하고, 진지한 성찰 대신 사회적 정서에 편승한 담론을 재생산한 것은 사실 당사자와 사회가 그 책임을 함께 짊어져야 할 일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깨끗해 보이는 그들의 승복과 물러남이다. 정치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서울대 법학 석사 논문이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일본 책에서 33곳을 가져다 짜깁기한 등의 사례가 드러났으나 사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기도 교육감을 지낸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은 석·박사 논문에서 ‘압도적 분량의 일문(日文) 표절’이란 지적을 받았으나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학위를 준 대학을 공개적으로 비하한 적반하장도 있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석사 논문의 절반 이상이 표절로 의심된다’는 문제 제기가 있자 학위를 반납했을 뿐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제가 어디 이름도 모르는 대학의 석사 학위가 필요하겠느냐”고 했다.
세 사람 모두 해당 대학의 자체 조사에서는 ‘문제가 있으나 위반 정도가 경미하다’(조국·김상곤)거나 ‘시효가 지나 심사 대상이 아니다’(이재명)라는 판정을 받았다. 설사 면죄부를 받았다 해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설민석·김미경처럼 반성하는 기색이라도 보여야 하겠지만, 이제 이들에게 표절 논란 정도는 코웃음 칠 사안이 돼 버린 듯하다.
왜 이러는 걸까. 정치인은 강사와 달리 늘 거짓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니 표절 좀 했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다고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그 정도 비난은 개의치 않을 정도로 철면피인 것일까? 결과적으로 이들은 설민석 같은 사람을 실제보다 훨씬 선량해 보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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