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182] 감각을 살리는 기술
작년만큼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적이 없다. ‘코로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30%가 넘는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처음 코로나 때문에 일이 취소됐을 때는 내심 밀린 책과 영화는 실컷 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사태가 오래가면서 어떤 것도 읽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나는 내가 너무 ‘보는 것’에 집중하며 살았음을 깨달았다. 읽고 보는 ‘시각적인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듣고, 맡고, 느끼는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오디오 북을 ‘듣기’ 시작했다. 듣는 감각을 집중해 쓰니, 눈을 감고 향기를 음미하거나, 꽃이나 음식을 찍는 대신 향기를 먼저 맡기 시작했다. 우울할 때마다 커피 향을 음미하고, 잔을 쥐었을 때 손바닥부터 퍼지는 따스한 촉각에 집중했다. 시각 편향적인 삶의 재편. 나는 이것을 ‘감각의 리밸런싱’이라 불렀다. 코로나 ‘덕분에’ 생긴 버릇이었다.
우디 앨런은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샤워를 했다. 탐험가였던 헨리 스탠리는 끔찍한 더위와 맹수들과 싸우며 밀림에서 사람들을 구조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참혹한 아프리카 밀림에서 그를 지켜준 건 매일 하는 아침 면도였다. 그는 면도를 하며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다잡았다. 골격 기형이었던 칸트는 건강 염려증에서 비롯된 불안을 견디기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후 3시 30분에 집 밖으로 나갔다. 이웃 사람들은 칸트의 산책 지팡이를 보고 시간을 알았다.
우울은 불확실성에 비례한다. 정부 지침은 수시로 바뀌고, 확진자 숫자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행복이 일정 정도 ‘예측 가능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어떻게 나를 지킬 수 있을까. 반복되는 일상에 힌트가 있다. 일기 쓰기와 설거지하기, 면도와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기. 우디 앨런은 그것을 ‘모드 전환’이라고 표현했다. 위대한 사람들 역시 자신만의 습관으로 맹렬한 불안에 맞섰다. 불확실한 코로나 시대에 확실히 위로가 되는 얘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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