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도자는 제퍼슨보다 리콴유에게서 영감을 얻는다"

양지호 기자 2021. 1. 2.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호주·아세안 등 포함한 大아시아 세계 GDP 50%, 인구 60% 차지
19세기 유럽, 20세기 미국 이을 것"

아시아가 바꿀 미래

파라그 카나 지음|고영태 옮김|동녘사이언스|523쪽|2만5000원

1일 새해맞이 명소인 뉴욕 타임스스퀘어는 코로나 방역 조치로 인적이 끊겼다. 이날 대만 타이베이에서는 4만명이 넘는 인파가 한데 모여 불꽃놀이를 구경하며 새해를 맞았다. 200년 넘게 이어져 온 서구 사회의 우위가 흔들리는 걸까. 이 책은 마침 “19세기 유럽화, 20세기 미국화, 21세기는 아시아화”라는 도발적 주장을 펼친다. 저자는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 출신으로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차세대 글로벌 리더. ‘아시아가 미래’라는 주장은 한 해 전만 해도 동화 같은 소리라는 지적을 들었겠지만, 이제는 솔깃해졌다.

저자는 인구구조와 경제 규모, 기술관료주의와 신중상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식 경제 개발 전략, 점차 강력해지는 아시아 문화의 영향력 등을 근거로 아시아의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아시아는 대(大) 아시아. 서쪽의 아라비아반도와 터키부터 동쪽으로는 일본과 뉴질랜드, 북쪽의 러시아에서 남쪽의 호주까지를 일컫는다. 전 세계 GDP의 50%를 차지하고, 세계 인구 78억명의 60%에 달하는 46억명이 살고 있다. 고령화로 신음하는 서양과 달리 젊은 노동력도 풍부하다. 아시아 인구는 유럽 인구의 10배, 북미 인구의 12배에 달한다.

저자는 “2015년부터 2030년 사이 세계 중산층 소비는 약 30조달러 증가할 텐데, 이 가운데 서양 국가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할 것”이라는 2017년 브루킹스 연구소 보고서의 추정치를 인용한다.

코로나 유행을 막아낸 대만 타이페이에서 지난 1일 4만명이 불꽃놀이를 보며 새해를 맞고 있다. 저자는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로이터 연합뉴스

서양의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라는 정치·경제 시스템도 싱가포르의 능력주의에 기반한 기술관료주의, 중국의 신중상주의(보호무역)에 길을 내 주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오만, 조지아, 아랍에미리트, 카자흐스탄 등은 싱가포르의 발전 모델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며 “21세기 국가 개발 계획 수립자, 경제 전략가들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이 아니라 싱가포르의 리콴유로부터 영감을 얻는다”고 썼다.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가 정책을 주도하면서 ‘편협하고 단기적이며 인기 영합주의적인 유행, 사적인 이익보다 전문가의 분석과 장기적 계획을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반면 그는 서구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을 잉태해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로 이어졌다고 비판한다. 또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이유로 신중상주의적인 경제정책을 꼽는다.

저자가 제시한 통계를 보면 중국 출신 미국 유학생의 82%는 학업을 마치고 중국으로 되돌아간다. 대표적으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미국 회사에서 일하다가 중국으로 돌아가 바이두를 창업한 리옌훙(로빈 리)이 있다. 그는 “아시아 학생들이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유학을 온다는 통념을 반박하는 수치”라며 “미국에서 배운 것을 각자의 나라로 가져가 조국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저자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 맨 부커상을 받은 한강,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인도계 소설가 줌파 라히리 등을 언급하며 서구 문화계에서도 아시아의 영향력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코로나 유행으로 서구 사회가 우왕좌왕하기 전인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이 책에 대해 “아시아가 움직일 때 세계의 질서도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책 발간 이후 코로나 방역에서 아시아는 서구에 판정승했다.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고,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인도계인 카멀라 해리스는 이 책에서 2017년 미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아시아계 영향력이 커진다는 사례로 등장하는데, 이제 미 부통령 당선인이다. 저자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책은 찬란한 아시아의 미래에서 한국 지분은 얼마나 될지를 고민하게 한다. 전문가 제언을 듣지 않고 코로나 백신 확보 레이스에서 뒤처지고, 멀쩡한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려는 한국을 기술관료주의 국가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시아 인구는 이미 세계 다른 지역 인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고, 더 늘어날 전망이지만, 한국은 가임기 여성 한 사람이 평생 0.8명을 낳는 세계 최저 출생률을 기록하는 국가다. 대(大) 아시아의 장밋빛 미래에서 한국도 함께할지, 새해 벽두부터 질문을 던진다.

책은 서구 사회에 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쓴 책인 만큼, 아시아인이 바라봤을 때는 피상적이고, 때로는 너무 순진하다는 약점도 드러난다. 특히 ‘일대일로’ 정책을 추구하는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노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중국 중심으로 아시아를 설명하는 것을 경계하며 다른 나라의 중요성을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평가도 있지만, 이질적인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를 뭉뚱그려 ‘아시아’라고 하는 기본 전제도 어색하다. 원제는 THE FUTURE IS ASIAN. ‘미래는 아시아인의/아시아적인/아시아 방식’이라는 뜻을 포괄하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