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언네서세리아트 시대'의 노동
[경향신문]
2021년 새해가 되었다. 내가 작년 마지막으로 참여한 공식 일정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취업박람회’였다. 원래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한 차례 연기되어 크리스마스이브에 온라인에서 이뤄졌다. 나는 ‘이것도 노동이다: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다’라는 타이틀 아래 진행된 토론회의 발제자로 함께했다.
발제를 준비하며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다 알게 된 용어가 하나 있다. 바로 ‘언네서세리아트’(unnecessariat)다. ‘불안정노동 계층’을 의미하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는 조어가 등장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제 우리는 말 그대로 ‘불필요한 계층’을 뜻하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자본은 노동 배제적 이윤 축적 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이런 조건 속에서 많은 이들이 ‘쓰레기가 되는 삶들’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은 과장된 수사가 아니게 되었다. 김정희원은 반복적으로 출현할 신종 바이러스에 취약한 인간 자체가 자본에 하나의 ‘생물학적 위험’(biohazard)으로 간주되면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이런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1차 산업혁명 시기에 형성된 언네서세리아트가 바로 일할 수 없는 몸을 뜻하는 ‘장애인’(the disable-bodied)이었고, 그들은 우리나라 1세대 장애인운동가들이 자주 사용한 표현을 빌리자면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치부되었다. 전체 장애인의 3분의 2가 직업을 가져본 적 없기에 실직자조차 될 수 없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 육체노동은 로봇으로 대체되고, 이에 따라 중간 관리노동은 최소화되며, 전문직의 정신노동은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할 근미래에 ‘장애인(일할 수 없는 몸)’과 ‘비장애인(일할 수 있는 몸)’의 경계는 완전히 새롭게 그어질 것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라는 말로 상징되는 포디즘의 시대는 또한 테일러주의라는 과학적 관리를 통해 노동자를 기계처럼 만들고자 한 시대이기도 했다. 물론 살아 있는 생명을 기계화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했고, 이를 안타까워했던 미국 기업가들의 심정을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수고>에서 “‘재수 없게도’ 노동자는 여전히 인간이다”라는 말로 비꼬듯 표현했다. 그러나 기계에 의한 인간 노동의 대체 정도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고, 산업예비군과는 질적으로 다른 하나의 ‘신분’으로서 언네서세리아트가 확립되면, 자본은 그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성취하게 될지도 모른다. 노동하는 자로서의 인간이 노동의 ‘정의’를, 그리고 노동에 부여된 ‘가치’의 사회적 의미를 갱신해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노들장애학궁리소의 고병권은 장애인이 “가치를 착취당하기 이전에 가치라는 개념 자체의 폭력에 시달리는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노동에 대한 논의가 계속해서 회계학적 잉여가치와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를 하나의 정상 규범으로 상정하는 한, 그 폭력은 우리 모두에게 점점 더 가혹하게 전면적으로 행사될 것이다. 2021년은 노동의 재구성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과 논의들이 활성화되는, 그리고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비롯한 급진적 제안과 실천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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