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인간 실존과 불안에 대한 성찰
인간, 본시 떠나야만 하는 존재
여행금지, 격리지침은 여전한데
2021년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실존의 의미는 불안과 불완전성
타인 존중과 연대가 유일한 해법
과거의 섣달그믐과는 전혀 다른 기분으로 우리는 2021년을 맞았다. 나는 지난해 2020년을 해외에서 맞았다. 공무로 미국 출장 중이었다. 출장에서 귀국하자마자 코로나19가 시작되었고, 출장 중 해외 대학들과 함께 논의했던 행사는 죄다 취소해야 했다. 해외여행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2021년도 1월 현재 지구촌 대부분이 외국여행객 입국금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도착지 없이 비행기만 타다가 출발지로 회항하는 여행상품까지 나왔다. 예기치 않은 격리생활이 시작되면서 우리 모두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리고 있다. 코로나19 심리지원단의 슬로건처럼 몸의 거리가 멀어져도 마음의 거리는 좁힐 수 있는 방법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모름지기 인간이란 늘 떠나야만 하는 존재인지 모르겠다. 인간의 실존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영어 단어 existence는 ‘밖으로’(out of)라는 의미의 접두어(ex)와 ‘선다’(standing)라는 뜻의 단어(stence)를 합해 놓은 합성어다. 자기가 선 자리에서 빠져나오려는 습성 때문인지 우리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일단 떠나고 본다. 누구나 인륜지대사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바로 공항으로 이동하여 여행을 떠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여기지 않는가.
왜 우린 떠나야만 할까?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생활이 빠듯한 대학생들도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을 털어 유럽여행을 떠난다. 정작 여행을 가면 시간과 공간을 즐길 틈이 없다. 수없이 찍어댄 사진들을 고르고 골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바로바로 올리는 일이 중요하다. 숙소에 돌아오면 밤새도록 사진 선정에 몰두해야 한다. 잠을 설쳐도 다음날은 무조건 새벽부터 일어나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건 기본이다.
왜 우린 허무한 노동에 가까운 여행을 해야 하는 걸까?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우리들의 마지막 여행지는 어딜까? 도착하면 더 이상 떠나지 않아도 될 곳이 있다면 좋으련만, 아마도 모범답안은 낙원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상낙원을 찾을 수 없다면, 지금 여기보다 더 나은 곳을 향해 우린 자꾸만 떠나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자리를 떠나야만 하는 실존(existence)의 숙명은 본시 우리가 불안하고 불완전한 존재여서가 아닐까?
2021년 우리는 다시금 차분히 우리의 실존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이 반드시 물리적인 행위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재의 자리, 즉 불안과 불완전성을 견디지 못하면 인간 실존은 지켜낼 수 없을 만큼 점점 무거워진다. 나는 전문상담 서비스를 통해 이런 존재의 무거움으로 상담실을 찾는 무수히 많은 이들을 만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내면의 불안과 불완전성은 거부하면 할수록 더욱 무거워지는 신비로운 실재다.
불안을 거부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사용하는 대처 양식이 원인을 전적으로 외부로 돌리는 일이다.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백신 접종이 미루어졌다고 호통치거나, 일부러 민심을 동요시키지 말라고 몰아쳐야 할 것 같다. 가장 불안이 고조되어 있는 곳은 안타깝게도 안전한 법안을 만들어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회다. 서로 남 탓하기 바쁘다. 지지율 바닥을 치는 대통령과 여당도 불안이 극에 달했다. 있는 그대로 불안을 수용하고 야당을 존중하고 대화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작년 교수신문이 2020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신조어를 택한 이유도 우리 모두 가장 불안한 실존을 경험한 한 해를 지내왔음을 방증한다. 자신은 옳고 남은 그르다는 내로남불의 자세는 가장 불안한 존재가 즐겨 쓰는 자기방어다. 올 한 해를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2021년 우리 모두는 여전히 불안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타인과 연대할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불완전성을 수용하고 타인의 존재를 존중할수록 우리는 불안을 견딜 작은 힘을 얻는다. 올 한 해 나부터 남 탓을 멈추고 내 불안을 살펴야겠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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