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미래가 온다
[경향신문]
코로나19의 습격으로 궁지에 몰렸던 인류는 2020년 말 여러 백신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간신히 반격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2021년은 아무쪼록 코로나19를 퇴치 혹은 정복하는 한 해가 되기를 빈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2021년이 시작되는 지금, 우리의 다짐은 이러한 미래의 급격한 도래라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적응과 대응으로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면서 그러한 미래의 세상을 열어나가겠다는 담대한 약속이 되어야 한다.
1920년대 초입, 세계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대사변을 겪고 난 후였고, 그 말미에는 스페인독감까지 돌았다. 그 새로운 세상이 1914년 이전의 ‘좋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했다. 변화의 씨앗들은 이미 전쟁 전부터 뿌려져 있었다. 2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구조와 에너지 전환이 다가오고 있었고, 자본 시장의 팽창으로 금융의 역할과 통화체제의 성격도 완전히 바뀌고 있었으며, 여러 사회 정책의 확대를 요구하는 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부 재정 구조도 확대일로에 있었다.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독감으로 초토화된 황무지에서 이 무수히 많은 미래의 씨앗들이 쑥쑥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이 미래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제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던 사상, 신념, 신조, 교조 등을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새로운 상상력과 철저한 현실주의에 기반하여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와 정확히 반대의 일이 벌어진 것이 1920년대의 세계였다. 강대국들은 이러한 변화된 현실에 대해 완전히 눈을 감아 버리고, 전쟁 이전의 19세기 세계를 복구하는 데에 모든 정력을 기울였다. 억지로 세력 균형을 회복하겠다고 워싱턴 군축회의가 진행되었으며, 치솟는 인플레와 살인적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국제 금본위제를 회복하겠다고 엄청난 긴축을 강요하였다. 이러한 현실과 제도의 괴리를 메꾸는 역할을 맡은 국제 금융 자본은 신나게 세계를 돌아다녔고, 자산 시장에서의 거품은 계속 커져갔다. 그러다가 1929년 월스트리트의 주가 폭락이 일어난 뒤 불과 두어 해 만에 온 세계는 급속한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완전히 다른 1930년대 세상으로 들어선다.
코로나19가 덮치기 전에도 미래로의 씨앗은 자라나고 있었다. 산업 기술 및 패러다임의 변화와 에너지 전환은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되어 있었고, 기후위기를 비롯한 각종 생태위기와 갈수록 악화되는 불평등은 지난 40년간 지탱해온 현존의 지구적 사회경제 체제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몇 개월이 아니라 이미 1년 이상, 아니 정확히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미래는 그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우선 디지털과 인공지능 등을 앞세운 산업 전환 및 에너지 전환이 급물살을 탈 것이 분명하다. 또한 1990년대 이후에 생겨난 이른바 지구적 통치체제라는 것이 코로나19 사태를 필두로 한 각종 생태위기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풀린 유동성으로 전 세계의 각종 자산시장은 끓어오르는 한편, 노동시장과 산업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으면서 가뜩이나 심각하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만성적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일자리를 잃은 불안정 노동자들과 폐업·파산을 맞은 중소상공인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2019년의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미래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2021년 이후의 세상은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원칙에 근거하여 실용적이면서도 과감한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통해 적응하고 적응하면서 맞아야 한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장기적 실업 상태에 빠져들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일자리와 소득을 노동시장에만 맡긴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1년 단위로 정부의 재정을 균형 상태로 맞추어야 한다는 19세기식 사고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기본소득, 참여소득, 고용보장제, 소득보장보험 등 2019년까지만 해도 아이디어로만 떠돌던 정책들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실험에 들어가야 한다. 교육이 불평등을 심화하고 고착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이를 완화하고 극복하는 장치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학교 제도 자체의 구조를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미래가 다가오는 속도를 급격하게 높여놓았다. 우리들의 생각과 상상력의 탄력성과 과감성도 이에 맞춰 급격하게 늘어나야 한다. 1920년대의 세계가 범했던 어리석음을 2020년대에 되풀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여러 도전이 펼쳐질 2021년을 과감한 응전의 자세로 맞도록 하자.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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