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얻는 선재길 걸으며 새해 설계해 볼까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시름은 비우고 희망은 채운다 / 천년고찰 월정사의 구도자의 길 ‘선재길’ / 뽀드득 뽀드득 걸으며 우울한 2020 날려···새해엔 밝은 날이 펼쳐질거야
강원도 평창 월정사로 가는 전나무숲길에 섰다. 바람이 불자 나뭇가지와 잎들이 서로 부대끼며 마치 겨울바다에 선 듯 파도처럼 “쏴아” 하고 파열음을 낸다. 바람이 지나면 들려오는 계곡의 물소리. 눈과 얼음으로 뒤덮였지만 그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는 청아하다. 눈을 감고 들으면 세상 모든 근심은 어느새 사라진다.
드라마 덕분이기도 하지만 천년고찰 월정사는 팔각구층석탑보다 전나무숲길과 상원사 가는 선재길이 더 유명하다. 특히 겨울 내내 눈꽃이 운치 있게 내려앉는 요즘이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을 선사한다. 전나무숲길은 일주문에서 월정사 금강교까지 1km 남짓 이어진다. 최고 수령 300년이 넘는 전나무 1700여그루가 오솔길 양옆을 채우고 길과 계곡이 하얀 눈으로 빈틈없이 채색된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다. 드라마처럼 폭설은 아니어서 다소 아쉽지만 겨울 낭만을 즐기는 데 모자람이 없다.
피톤치드를 폐속 깊이 저장하며 걷다 보니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난다. 많은 이들이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설국으로 변한 계곡의 얼음 위에서 사진을 찍으며 모처럼 평화로운 휴식을 즐기고 있다. 하얀 눈과 얼음 위로 바위들이 조금씩 머리를 내민 계곡 풍경은 마치 솜씨 좋은 조각가가 만든 예술작품 같다. 얼음과 바위에 부딪히며 계곡에 퍼지는 물소리는 겨울에도 “시원하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들 정도로 상쾌하다. 매우 미끄럽다. 얇은 얼음이 푹 꺼지면서 낭패를 볼 수 있으니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더라도 조심하도록. 등산화나 트래킹화가 필수다.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는데 적광전 앞 팔각구층석탑만 살아남아 국보가 됐다. 우리나라에 남은 유일한 고려시대 다각다층탑으로 마치 연꽃이 갓 피어오른 듯한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바람이 불자 처음 들어보는 청아한 종소리가 산사에 울려 퍼지며 마음의 때를 씻는다. 석탑 각 층 귀퉁이마다 달린 80개의 작은 청동 풍경 덕분. 탑앞에 두 손을 모으고 공양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은 석조보살좌상의 매력적인 미소도 인상적이다. 금강교 아래 용소는 겨울여행의 운치를 더한다. 가을이면 금강교와 불타는 오대산 단풍이 데칼코마니처럼 담기는 곳인데 눈으로 덮인 풍경도 단풍 못지않다. 이곳에 살던 용이 뛰쳐나와 석탑으로 변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상원사 가는 도로는 비포장길이다. 9km 정도로 20분 정도 걸리는데 상원사에서 길이 끝나기에 다시 돌아 나와야 한다. 월정사 말사인 상원사는 규모가 작고 고즈넉하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을 이곳에서 만나는데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 상원사를 지나면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까지 오를 수 있다. 가는 길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등장하고 200m 앞에는 적멸보궁을 지키는 중대 사자암도 등장한다. 오대산을 상징하는 5층 계단식 향각이 독특하다.
평창=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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