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 못하지만 새 기회 잡아야" 애플·LG의 미래차 전쟁

2021. 1. 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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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전자 기업, 차 시장 진출 러시
첨단 전자장비 기술 경쟁력 보유
기존 주력 수익원은 미래 불투명
성장성 높은 차세대 차에 눈독
다이슨·삼성 쓴맛, 리스크 상존
팀 쿡 애플 CEO가 2016년 주주들에게 애플의 ‘아이카(iCAR)’ 콘셉트 이미지를 소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2월 23일 LG전자 주가는 2008년 10월 이후 12년 만에 상한가(29.6% 상승)를 기록했다. 12년 전엔 국내 증시의 주가 상·하한 폭이 전일 종가 대비 15%였다는 점, LG전자가 시가총액이 20조원 넘는 ‘무거운 주식’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후로도 계속 오른 LG전자 주가는 같은 달 30일 13만5000원의 신고가로 한 해를 마감했다.

LG전자가 세계 3위 자동차 부품 업체인 캐나다의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손잡고, 오는 7월 국내에 약 1조원 규모의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발표해 시장의 기대감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파워트레인은 차세대 자동차인 자율주행차와 전기차의 핵심이 되는 동력전달 장치다. 특히 이 합작법인은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공룡인 애플이 2024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자율주행 전기차 ‘아이카(iCAR, 가칭)’에 파워트레인을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나 LG전자처럼 이미 ICT와 전자 분야에서 특출난 기업들이 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자율주행차와 전기차가 그만큼 전도유망한 시장이어서다. 회계법인 삼정KPMG 등에 따르면 글로벌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는 2020년 8조5000억원에서 2035년 1334조원으로 157배 수준으로 커질 전망이다. 2040년에는 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33%(4412만대)를 자율주행차가 차지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전기차 시장도 질주할 것으로 보인다. 연평균 20~30%대의 고성장 속에 2025년이면 글로벌 판매량이 830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기존 자동차 제조사 역량으론 한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ICT·전자 기업의 자동차 산업 러시는 이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기존 수익원의 미래가 불투명해져서다. 예컨대 애플의 대표 수익원인 스마트폰은 2018년 글로벌 출하량이 전년 대비 첫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수년째 정체 상태다. 2020년 출하량도 전년보다 10.7%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규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술 발전으로 길어진 스마트폰 교체 주기,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의 스마트폰 보급률 초과 달성,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 등이 겹치면서 정체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LG전자는 스마트폰 분야에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LG전자의 핵심 수익원은 미국의 월풀 등을 제치고 세계 1위를 달리는 생활가전이다. 코로나19 직격탄에 고전한 경쟁사들과 달리,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한 전략이 통해 2020년 생활가전 분야에서만 21조원이 넘는 매출과 사상 최대치인 2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생활가전 시장은 규모 자체가 스마트폰이나 차세대 자동차보다 크지 않고, 연평균 성장률도 한 자릿수로 낮은 편이다. 이에 LG전자는 자율주행차용 모듈·부품 등을 개발하는 등 수년간 꾸준히 자동차 산업에서 수익선 다변화를 시도해 왔다. LG그룹은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 호조로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해외에서도 애플은 물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등이 수년째 차세대 자동차용 기술 개발에 힘써왔다.

차세대 자동차가 기존 자동차 제조사의 역량만으로는 시장이 요구하는 충분한 기술 수준을 빠르게 확보하기 힘든 분야라는 점도 이들이 자동차 산업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바퀴 달린 컴퓨터’인 자율주행차에 없어서는 안 될 인공지능은 빅데이터 확보와 딥러닝 등 고도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발전시킬 수 있다. 하드웨어도 시스템 반도체와 ICT 기반의 첨단 전자장비(전장)가 핵심이다. 전기차 역시 배터리뿐만 아니라 일반 자동차의 엔진 역할을 하는 모터 등에서 ICT·전자 업계의 숙련된 역량이 필수 요소다.

서로 다른 업계 합종연횡도 활발

이 때문에 서로 다른 업계의 합종연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5월 충남 천안의 삼성SDI 사업장에서 회동한 게 단적인 사례다. 당시 이들은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기술을 살피고 3시간가량 전기차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현대차그룹은 이후 삼성 측과 전기차뿐만 아니라 자율주행차 분야의 협력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자동차 전장 기업이자 ‘디지털 콕핏’ 제조가 장기인 미국의 하만을 2017년 약 9조원을 들여 인수했다. 디지털 콕핏은 사물인터넷 등 ICT로 작동하는 자동차 조종석을 가리키는 말이다. 터치 패널로 운전자가 주행 방식을 제어할 수 있어 자율주행 시대의 핵심 기술로 분류된다. 자동차 산업 자문을 하는 위승훈 삼정KPMG 부대표는 “차세대 자동차로 업종 간 경계가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다”며 “경쟁에서 이기려는 기업들 입장에선 다른 분야 기업과의 협업 체계를 전략적으로 잘 구축해,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시장 선점을 노리는 일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자동차 산업은 내로라하는 ICT·전자 업계 거물들도 나가 떨어지는 전쟁터다. 영국의 다이슨은 무선청소기 등을 만들면서 쌓은 모터 제조 기술력을 앞세워 2016년 전기차 개발을 선언했다. 이후 2021년 상용화를 목표로 공격적으로 투자했지만 2019년 10월 개발에서 손을 뗐다. 수년간 재무 부담은 가중됐는데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서였다. 삼성전자도 자동차 매니어인 고 이건희 회장 시절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전례가 있다. 외환위기 여파와 기아자동차 인수 무산 등 악재에다, 안전 문제가 전자 제품보다 크게 작용하는 업종인 관계로 소비자들이 보수적으로 접근한 영향이 컸다.

LG전자는 이들처럼 직접 자동차 제조에 뛰어드는 대신에 일부 부품 제조와 합작법인 설립 등 우회로를 택하면서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 애플도 아이폰처럼 차세대 자동차를 전량 외부 위탁 생산해 리스크를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홍콩 톈펑국제증권의 밍치 궈 애널리스트는 외신 인터뷰에서 “애플의 자동차 개발 일정은 아직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다”며 “2028년 이후로 출시가 미뤄져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때쯤엔 지금의 자율주행차 개발 기업들이 5년 이상 빅데이터를 축적했을 텐데 후발주자인 애플이 그 격차를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 현대차 등 자동차 업계는 도리어 로봇·ICT에 주목

「 ICT·전자 업계가 자동차 산업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면, 자동차 업계는 거꾸로 이들 산업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로봇 분야가 대표적이다. 지난 12월 11일 현대차그룹은 미국의 로봇 개발 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지분 가치는 11억 달러(약 1조2000억원)로, 현대차그룹은 약 9600억원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룹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인수 금액이다.

이 같은 결정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정 회장은 2019년 말 공식석상에서 “향후 그룹 사업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이고 나머지 30%는 도심형 개인 항공기(플라잉카), 20%는 로봇을 다루는 로보틱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제조사에서 진화한 ‘종합 이동수단(모빌리티) 서비스 제공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미였다. 1992년 설립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족·4족 보행 로봇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2013년부터 구글과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공룡들이 이 회사에 투자해 협력 방안을 모색해왔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기술을 적극 활용해 차세대 모빌리티 서비스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다른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도 로봇을 활용한 미래 먹을거리 발굴에 적극적이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자율주행 충전 로봇을 활용하는 새로운 전기차 충전 기술을 개발해 2020년 초 공개했다. 미국 포드는 최대 18㎏짜리 사물을 들 수 있는 직립 보행 로봇을 다른 기업과 공동 개발해 상용화를 앞뒀다. 일본 도요타 역시 다양한 로봇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미래의 모빌리티는 ICT·전자 중심의 플랫폼”이라며 “자동차와 ICT·전자 산업이 긴밀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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