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한인 여성 사회주의자, 뜨거웠던 그녀의 삶
사회주의 투신, 맹렬 노동운동
러시아 내전 와중에 총살형
편지·증언 모아 소설로 복원
정철훈 지음
시대의창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1885~1918)의 한국 이름은 김수라다. 그녀는 1917년 소련 공산당의 전신인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 당원이 된 한인 최초의 여성 사회주의자다. 노동계나 전문가 그룹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그녀를 소상하게 소개한 지은이 정철훈은 독보적인 알렉산드라 연구자다. 지은이는 그녀를 다룬 소설과 평전, 편지 그리고 동지 이인섭과 러시아인들의 증언 등을 다시 정리하고 추가 자료와 연구를 집대성해 이번에 알렉산드라의 일대기를 완성했다.
김수라는 고종 22년인 1885년 2월 22일 러시아 연해주의 시넬리코보에서 한인 2세로 태어났다. 함경도 경흥 출신인 아버지 김두서는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동생들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 그는 중국 훈춘을 전전하며 삯일을 하다 1870년을 전후해 연해주로 이주해 정착했다. 수라는 블라디보스토크 여성사범학교에 다니며 독서회에서 러시아 혁명가와 사상가의 저술을 접했고 자유와 평등 정신에 눈을 떴으며 졸업 후 고향 시넬리코보 근처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러시아인 마르크와 결혼한 수라는 23세부터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시작한다. 차르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는 레닌의 입장을 지지했던 수라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을 거점으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열었다. 품팔이 노동으로 끼니를 이어 가던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자유와 평등, 진리와 정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항만·철도 노조를 연대시켜 임금 보장을 주장하는 동맹파업을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 차르 헌병대의 추적을 받고는 남장을 하고 중국 접경지역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이 같은 수라의 열성적인 노동운동이 러시아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자 볼셰비키는 그를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시키고 연해주에서의 조직사업을 맡긴다. 레닌의 총애를 받은 혁명가 야코프 미하일로비치 스베르들로프가 그와 나이가 같은 알렉산드라를 하바롭스크시 당 서기로 천거했다. 수라는 극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첫 기착지인 옴스크에서 한인들을 만나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한국말로 구술했으며 동지가 된 이인섭이 이를 받아 적었다. 최초의 한국어 ‘공산당 선언’인 셈이다.
하바롭스크에 도착한 수라는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극동지방 대표자 대회에 참석하고 극동소비에트 정부 외무위원에 선출되는 등 볼셰비키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녀는 이동휘·유동열·이한영·오성묵 등이 민족해방과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하는 한인사회당을 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레닌이 1917년 10월 혁명에 성공했지만 볼셰비키 정권 수립에 반대하는 극동의 멘셰비키 백위군은 볼셰비키와 치열한 내전을 벌인다. 멘셰비키 백위군의 공격을 받은 수라는 상선 바론 코르프호를 타고 도피하다 붙잡혔다. 수라는 백위군의 모진 고문에도 끝내 전향을 거부하다 1918년 9월 16일 아무르강이 보이는 하바롭스크시 우초스 절벽에서 총살을 당한다.
대하드라마 같은 김수라의 일대기는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적 내러티브로 기술됐다. 이 책은 그녀의 일생뿐 아니라 당시 광활한 러시아 극동과 중국 접경 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등 많은 한인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 초기 한인 이주사 자료로도 참고서가 될 만하다.
북한은 1950년대에 평양혁명박물관에 알렉산드라의 대형 사진을 내걸며 그녀를 사회주의 영웅으로 부각시켰다. 반면 한국에서는 한 세기 전에 러시아 땅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았던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역사가 그녀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데올로기를 떠나 그 인물에 대한 연구만큼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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