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개발, 속도 빠르다고 능사 아니다 [의술인술]

김동규 서울대 명예교수·신경외과학 2021. 1. 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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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아내가 첫아이를 가졌을 때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아내가 퇴근길에 순댓국이 먹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둘이서 뚝딱 한 뚝배기씩 비웠다. 기분 좋게 식당을 나와 택시를 탈 때까지는 좋았다. 한데 아내가 갑자기 얼굴이 노래지면서 토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해볼 도리 없이 토사물이 차 바닥에 흩어졌다. 깜짝 놀란 운전기사의 얼굴에 노기가 등등했다. 아내 진정시키랴, 기사에게 사과하랴 등에 진땀이 흘렀다. 임신 중임을 설명하고 지갑에 있던 돈을 탈탈 털어 세차비로 내고 간신히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다행히 아내는 이내 몸 상태가 회복됐다. 말로만 듣던 입덧을 간접 경험하면서 엄마가 된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수요에는 공급이 따르기 마련이다. 1957년 서독의 한 제약회사가 진정제 및 수면제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라는 약품을 내놓았다. 그런데 입덧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많은 임신부가 이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비극의 서막이었다. 약을 사용한 산모들이 사지가 없거나 짧은 아기를 출산한 것이다. 결국 약이 원인이라고 밝혀지기까지 약 5년간 사용되다 1961년에야 판매가 금지됐다. 쥐 실험에서 안전성이 입증되어 판매 허가가 났던 것인데 동물과 사람의 차이, 태아에 대한 영향을 간과한 것이 결정적 착오였다. 전 세계적으로 1만명 이상의 피해자를 남긴 이 사건은 현대 의학에서 가장 뼈아픈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피해는 주로 유럽에서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보고된 예가 극히 적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심사위원 한 명이 태아에 대한 영향 등 실험 자료가 부족한 점을 이유로 주위 압력에 굴하지 않았다. 위기에서 영웅이 난다고, 승인을 끝까지 반대했던 프랜시스 켈시 박사의 뚝심과 FDA의 명성이 크게 부각되기도 했다.

서설이 좀 길었는데 얼마 전 마스크를 쓰고 휠체어를 탄 90세의 영국 할머니가 수줍은 듯 환한 얼굴로 의료진의 박수를 받으며 세계 최초로 코로나 백신을 투여받고 병원을 나서는 사진을 봤다. 영국에 이어 미국 등 선진 각국에서도 속속 예방 접종을 시작했다. 하지만 백신의 부작용 등 문제가 확실히 제거됐다는 소식은 잘 들리지 않는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은 물론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경험하지 못한 암흑기를 초래한 코로나19를 박멸시킬 수단이 백신 외에는 뾰족한 길이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 신속한 백신 개발 시도는 당연하다는 데 동의한다. 여론도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는 평상시처럼 오래 걸리는 실험 기간을 단축하는 것에 찬동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급박한 현실이나 여론이 항상 정답일 수는 없다는 교훈은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탈리도마이드’의 예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물론 반대가 능사는 아니지만 밀어붙이기식의 정책 또한 건전하다고 할 순 없다.

효과 좋고 안전한 백신에 기대를 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정말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코로나19를 하루빨리 이겨내고 평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국가를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득실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결정할 것이고 국민은 이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시행 전에 결정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국민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필수다.

김동규 서울대 명예교수·신경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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