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 진지하게 낭만적이려면.. [이종산의 장르를 읽다]

이종산 소설가 2021. 1. 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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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햇살을 타고
틸리 월든

<햇살을 타고>의 구성은 초중반부까지는 좀 혼란스럽다.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것 같은데, 어떤 연관이 있는 건지 확실히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 복잡할지언정, 지루하지는 않다.

우주를 돌아다니며 낡은 건물을 수리하는 어느 소규모 팀의 이야기와 전학생과 사랑에 빠진 소녀의 이야기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왜 작가가 앞부분을 불친절하고 혼란스럽게 짜놓았는지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불친절성과 낭만성이었다. 독자에게 친절한 작품을 써야 해. 싸구려 낭만은 안 돼. 그 두 가지는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세운 수많은 규칙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햇살을 타고>는 세상의 많은 규칙들을 가뿐하게 넘어버린다. 이 책의 불친절함은 10대가 겪는 혼란스러움과 맞닿아 있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는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이 책의 독특한 매력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하고 싶어서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더욱 꼼꼼히 들여다보게 된다.

한편 <햇살을 타고> 속의 한없이 낭만적인 페이지들은 낭만을 은연중에 우습게 여겼던 나의 코를 납작하게 뭉개버렸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미아와 그레이스는 우주에 있는 학교에 다녀서 학교 안의 모든 창문에 무심히 우주의 풍경이 들어 있다. 낡은 건물을 수리하러 다니는 팀원들은 물고기 모양의 우주선을 타고 다닌다. 물고기 모양 우주선의 이름은 ‘액티스(AKTIS)’, 즉 ‘햇살’이다. 이 책의 제목이 왜 <햇살을 타고>인지가 밝혀지는 건 무려 325쪽에 와서다.

이 책은 하이틴물의 뻔한 졸업무도회도 꿈결처럼 변주시킨다. 그레이스를 데리러 온 소녀 미아는 몸에 잘 맞는 바지 정장을 입었고, 주로 교복 차림이던 그레이스는 다른 날과 달리 예쁜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미아를 맞이한다. 미아는 동급생의 꽃다발에서 꽃을 한 송이 훔쳐왔다. “어떤 애한테 꽃 한 송이를 겨우 뺏어왔고, 옷도 서둘러 입어서 난 엉망인데 넌 참 예쁘다. 너한테 줄 꽃도 미리 주문해놓고 카드도 일찍 만들었어야 했는데. 난 네가 내 여친이라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그리고 두 사람은 미아가 체육관에서 훔쳐온 호버보드(공중에 뜨는 보드)를 타고 무도회장으로 간다. 147쪽에 나오는 이 장면은 내가 평생 본 영화와 만화, 소설을 다 합친 중에서도 가장 로맨틱한 순간이다.

<햇살을 타고>는 10대의 성장과 모험이 중요한 이야기지만, 그만큼 낭만성이 중요한 책이기도 하다.

10대 시절의 나는 ‘이런 건 나중에 생각하면 너무 유치해서 부끄러울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애쓰던 아이였다. 하지만 <햇살을 타고> 속 미아와 그레이스를 보며 그 나이에만 가능한 낭만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10대 시절은 누군가를 가장 진지하게 사랑할 수 있는 나이다.

성인이 되어 진지하게 낭만적이려면 특별한 용감함이 필요한 것 같다. 어른이 된 미아가 단지 예전에 하지 못한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레이스를 찾아갔을 때처럼.

이종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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