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의 역사 - 움베르토 에코 [기혜경의 내 인생의 책 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2021. 1. 1. 21: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추의 역사, 차별의 역사

[경향신문]

<추의 역사>는 우리에게 <장미의 이름>으로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의 방대한 연구서이자 미의 역사를 다룬 전작에 이은 속편이다. 이 시리즈에서 에코는 탁월한 지성과 특유의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이 미와 추를 다루어온 방식을 탐구한다. 전문가용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미와 추의 역사를 문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살피고 있다.

책은 미가 쾌의 감정을 유발하며 항상 우리 옆에 있었던 것처럼, 추 역시 죽음, 악마, 지옥, 괴물, 외설스러운 것, 마법, 두려움, 타자 등의 이름으로 인간 역사와 함께하며 시대에 따라 표현 방식을 달리해왔음을 알게 한다.

추에 관한 백과사전과도 같은 이 책을 읽는 것은 사실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관련 자료들을 찾고 맥락을 살피며 몇 번에 걸쳐 다시 읽는 시도 끝에 마침내 끝을 맺은 책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이 책을 다 읽었다고 감히 말하기를 꺼린다. 그러면서도 ‘내 인생의 책’에 이 책을 꼽는 것은 읽을 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추라는 것은 시간과 문화에 따라 상대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용인되지 못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인되기도 한다는 것, 추는 미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시대에 따라 규범으로 정의되었던 획일적인 미의 전횡으로부터 인간 이성과 감성을 해방시켜왔다는 것 등을 일깨운다.

더 나아가 추의 역사는 곧 한 사회가 불편해하는 것들, 사회 속에서 몫 없는 자들, 약자들, 우리와 다른 타자를 추로 차별해온 역사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우리 안에 내재한 구별 짓기의 문제를 다시 살필 것을 촉구하는 책이기도 하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