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검찰총장 신년사
[경향신문]
많은 기관장들이 연초에 신년사를 낸다. 그러나 현안이 있는 곳 외에는 언론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다. 새해가 밝았다는 것으로 시작해 어려웠던 지난해를 회고하고, 올해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며, 모두들 복 많이 받자는 덕담으로 끝난다. 외부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은 일부러 담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대부분 조직 환경과 문제점 등 구성원들이 평소 듣던 얘기를 나열하는 수준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021년 신축년 신년사를 발표했다. ‘검찰 가족 여러분!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로 시작해 ‘새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하며 소망을 모두 이루시기 바랍니다’로 끝을 맺었다. 작년에 없던 코로나19 방역 강화가 들어갔고, 검찰개혁,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 인권 등 윤 총장이 평소 강조하는 키워드로 글이 구성됐다.
보통이라면 한번 훑고 넘길 글이지만 윤 총장 신년사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윤 총장은 “검찰은 경찰, 법원, 교정시설로 연결되는 형사사법 과정의 중심에 놓여 있으므로 우리 자체 시설과 관련 시설의 방역 체계 수립과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19가 대유행인 요즘 국면에서 당연한 내용이지만 한편으로는 구치소 방역에 실패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공격용이라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민생경제가 매우 어려우므로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이 일시적인 과오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그 사정을 최대한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한 부분도 뒷말이 많다. 검찰총장은 경제와 민생을 챙기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다는 점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2300자 분량의 글에 14번이나 국민을 언급했겠느냐는 것이다.
윤 총장은 억울하겠지만 그의 모든 언행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현직 검찰총장이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면서 생긴 일이다. 윤 총장 개인에게는 명예일 수 있지만 검찰 조직이나 후배 검사들에게는 멍에가 되고 있다. 어쩌다 검찰총장 신년사까지 밑줄을 쳐가며 행간을 읽어야 하는 상황이 됐을까. 윤 총장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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