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만에 애물단지된 500억짜리 유리온실, 60대 회장님·30대 농부가 손잡고 살려냈다

정혁훈 2021. 1. 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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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아시아 최대 유리온실 운영 '우일팜' 백노현 회장 & 유현성 대표
아시아 최대 규모 유리온실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우일팜의 백노현 회장(65·왼쪽)과 유현성 대표(35)가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2012년 12월 말 경기도 화성에서는 한국 농업계 빅 이벤트가 열렸다. 아시아 최대 규모로 지어진 첨단 유리온실 준공식이었다. 당시 서규용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까지 참석한 행사는 신문과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유리온실 주인은 국내 대표 농기업인 동부팜한농(현 팜한농)이었다.

비료와 농약, 종자 등을 생산하는 종합 농기업 동부팜한농은 한 벤처기업이 추진하다 실패한 유리온실 사업을 인수해 공사를 마쳤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아시아 최대 유리온실은 세 달 천하로 막을 내렸다.

토마토 재배 농가들이 대대적으로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부산의 한 토마토 작목반에서 시작된 반발이 전국 토마토 농가로 확산됐다. 대기업이 텃밭에까지 뛰어들어 농민들을 다 죽일 셈이냐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급기야 동부팜한농의 비료와 농약, 종자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지자 회사 측은 전격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회사 자금 380억원과 자유무역협정(FTA) 기금 87억원 등 총 467억원이 투입된 사업이었지만 회사 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사건은 한국에선 대기업이 농업에 잘못 뛰어들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후 화성의 초대형 첨단 유리온실은 우리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농업계에서조차 그 유리온실이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을 정도다.

이 비운의 유리온실이 최근 들어 제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동부팜한농이 사업을 포기한 직후 유리온실이 시장에 매물로 나왔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다가 2015년에야 농업법인 우일팜에 170억원에 인수되면서 회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대규모 유리온실 토마토 농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일팜은 인수 후 3년간 수십억 원의 적자를 면치 못하며 고전했다. 병충해로 인한 재배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8년부터 토마토가 제대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60대인 우일팜 회장이 30대의 젊은 토마토 재배 전문가에게 전권을 주고 유리온실 운영을 맡긴 결과였다. 재작년 겨우 손실을 면했던 우일팜은 작년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생산량의 상당 비중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어 더 이상 농민들과 갈등을 벌일 이유도 없다.

수렁에 빠졌던 한국의 첨단 유리온실 농업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우일팜의 백노현 회장(65)과 유현성 대표(35)를 현장에서 만났다.

아시아 최대 규모인 우일팜 유리온실 안에서 직원들이 토마토 수확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충우 기자]
―유리온실 규모가 대단하다. 어느 정도인가.

▷백노현 회장=유리온실 바닥면적만 10.5㏊에 달한다. 거의 3만2000평 정도 된다. 이와 별도로 육묘장과 유통센터를 내부에 갖추고 있다. 유리온실과 부속 공간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직사각형인데 가로가 712m, 세로는 165m에 달한다. 축구장 16개가 들어갈 수 있는 넓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유리온실을 2015년에 인수한 배경은.

▷백 회장='총, 균, 쇠' '사피엔스'와 같은 인문서적을 읽으며 농업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특히 멕시코 토착민들이 토마토로 얻은 면역력 덕분에 유럽인들이 옮겨온 세균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이나 유럽인들이 토마토 덕분에 흑사병을 이겨낸 역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토마토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유리온실이 매물로 나온 것을 알고 인수전에 뛰어들게 됐다.

―인수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백 회장=합판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30대 초반 나이에 중전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마침 제조업 고도 성장기를 맞이해 사업이 잘됐다. 이를 기반으로 뒤에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소를 잇달아 인수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본업 외에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다 보니 현금이 꽤 모였고, 이를 유리온실 인수자금으로 썼다.

―인수 후 몇 년간 고전했다고 들었다.

▷백 회장=유리온실 운영 경험이 부족했다. 인수 초기에 명문대 농학박사 위주로 인력을 구성해 토마토 농사를 지었지만 잘 자라다가도 병충해로 죽어버리곤 했다. 일당 150만원짜리 전문 컨설턴트도 초빙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담배가루이'라는 해충이 문제였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실제 재배 노하우가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방제를 못했다. 거의 3년간 허송세월하며 50억원 정도를 까먹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인 우일팜 유리온실 겉모습. [이충우 기자]
―온실을 어떻게 살려냈나.

▷백 회장=토마토 재배 노하우를 갖춘 현장 전문가를 수소문했다. 다행히도 화성 유리온실 인수 후 동부팜에서 추가로 인수한 팜슨 논산 유리온실에서 재배팀장을 맡고 있던 유현성 과장을 찾아냈다. 농대를 졸업하고 2010년 팜슨에 입사한 그는 2017년까지 7년간 꼬박 토마토 농사를 지어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그야말로 현장 전문가였다. 2018년 초 그를 두 단계 진급시켜 우일팜 부장으로 영입했다. 그리고 온실 운영에 관한 전권을 위임했다.

―그 뒤로 뭐가 어떻게 달라졌나.

▷백 회장=거짓말처럼 병충해가 잡히고 토마토가 잘 자라기 시작했다. 생산이 안정화되면서 샌드위치류에 들어가는 완숙 토마토 위주에서 탈피해 재배가 까다로운 특수 토마토로 품목을 늘릴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일본 소매 시장에도 진출해 수익성을 높였다. 유 대표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직원도 많았지만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업무를 잘 이끌어 나가는 등 리더십도 갖추고 있었다. 작년 초 그를 대표로 전격 승진시켰다.

―죽어가는 유리온실을 살린 비결이 뭔가.

▷유현성 대표=비결이 있다기보다는 현장을 보는 눈을 가진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7년간 유리온실을 지키다 보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걸 경험한 게 큰 힘이 됐다. 일단 재배가 잘되기 시작한 뒤로는 농장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농사는 올해 잘됐다고 내년에 잘된다는 보장이 있는 사업이 아니다. 매년 날씨도 다르고 해충도 다르다. 정답이 없는 게임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늘 현장에서 답을 잘 찾아나가야 한다.

▷백 회장=유 대표는 열정과 책임감이 대단한 사람이다. 토마토 농사 초기에 담배가루이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데, 해충 퇴치 장비 2대 전부가 동시에 고장난 적이 있었다. 당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고장난 부품이 네덜란드에서 새로 들어올 때까지 거의 한 달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걸 봤다. 만약 유 대표였다면 국내 공구상가에 부품을 수소문하고 밤을 새워서라도 기계를 고쳤을 것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인 우일팜 유리온실을 멀리서 찍은 모습. 길이가 무려 712m에 달한다. [정혁훈 기자]
―작년 작황은 어땠나.

▷유 대표=지난여름 유독 비도 많이 내리고 태풍도 많았던 탓에 광량이 부족해 애를 먹었다. 그나마 유리온실은 노지에 비해 기후조건에 덜 민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는 괜찮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노지 토마토 가격이 일시적으로 급등하는 바람에 수출 계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재무적인 부담을 피하기 어려웠다.

―수출에 부담이 있었다는 건 무슨 뜻인가.

▷유 대표=우리와 거래하는 일본 샌드위치 업체들은 정해진 크기의 토마토만을 원한다. 우리가 생산량이 많기는 하지만 자체 생산만으로 특정 크기의 토마토 물량을 다 맞추기는 어렵다. 일부 물량을 수출계약 농가에서 구입해 일본으로 함께 공급하는데, 지난여름처럼 날씨가 나쁘면 토마토 가격이 너무 올라 일본 수출 계약 가격보다 비싸게 매입해야 한다. 그 가격 차이만큼 손해가 난다.

―수출 때문에 손해가 나면 수출을 줄이면 되지 않나.

▷백 회장=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아무리 손해가 나도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한 번 수출하고 말 것도 아닌데 가격이 변했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사업가의 도리가 아니다. 또한 생산량 일정 비중 이상을 수출하기로 한 당초 협약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농민들과의 상생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지구온난화 등 영향으로 자연재해가 갈수록 심각해질 텐데.

▷유 대표=지난여름을 겪으면서 갈수록 광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 대비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조명을 보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고압 나트륨 등이 추가로 설치되면 열과 빛이 더 나기 때문에 여름은 물론 겨울철에도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 생산 물량은 어느 정도인가.

▷유 대표=작년부터 생산량이 늘어 완숙 토마토류 약 1700t, 대추토마토류 약 800t 등 대략 연간 2500t 정도다. 매출로는 대략 140억원에 해당한다. 생산 물량을 3000t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토마토 품종을 선택할 때도 상생을 고려한다고 들었는데.

▷유 대표=기존 농가에서는 하지 않던 새로운 품종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 어떤 품종은 일반 토마토에 비해 5배 비싼 종자를 구하기 위해 네덜란드 업체와 직접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에도 팔지 않던 종자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구입해 들여와 재배하기도 했다.

―그러면 이제 토마토 농장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건가.

▷백 회장=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재배를 어렵게 정상화시키고 약속대로 수출 비중도 맞추고 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조제를 막아 생긴 화옹호에서 농업용수를 공급받아야 하는데 담수화 작업이 늦어져 아직도 못 받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수돗물을 사용하다 보니 비용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기숙사도 건축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유리온실이 위치해 있는 공공개발지 사업이 완료된 뒤에야 허가를 내준다고 하는데, 유리온실이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전향적으로 검토해줬으면 좋겠다.

―유리온실을 직접 운영해 보니 어떤가.

▷유 대표=처음에 우일팜에 왔을 때는 기존 농장에 비해 규모가 3배 가까이 되다 보니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에 완벽히 적응해 지금보다 다양한 품종을 대규모로 생산해 더 많은 물량을 수출하고 싶은 꿈을 갖게 됐다.

▶▶ 백노현 회장은…

회사원을 하다가 30대 초반에 창업해 중전기 사업으로 돈을 꽤 벌었다. 이후 LPG 충전소 사업을 연달아 인수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었지만 농업의 잠재력을 보고 토마토 유리온실 사업에 뛰어들었다.

▶▶ 유현성 대표는…

농대를 졸업한 뒤 전공을 살려 토마토 유리온실을 보유한 팜슨에 취직했다. 과장이 되기까지 7년간 유리온실에서 보여준 실력과 열정을 백 회장이 높이 사면서 30대 중반에 아시아 최대 유리온실 대표가 됐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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