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도 학습 대상..미국선 초등학생때 '협상의 기술' 배운다

윤원섭,서동철,박승철,진영태,전경운,문재용 2021. 1. 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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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대통합 '5대 액션플랜'

◆ 2021 신년기획 Rebuild Korea (下) ◆

2021년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는 코로나19와 사회 갈등으로 답답한 한 해였지만 올해는 전 국민이 하나가 돼 떠오르는 태양 아래 쭉 뻗은 도로처럼 막힘 없이 달려나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진은 2020년 12월 15일 오전 7시께 충북 보은 수리티재에서 바라본 당진영덕고속도로 일출. [이충우 기자]
매일경제신문이 지난해 코로나19로 촉발된 분열과 갈등을 뒤로하고 올해 국가 대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5가지 구체적 액션플랜을 제시한다. 신년기획 100명의 오피니언 리더 설문조사에서 정치 갈등이 우리 사회 분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국회의 갈등 조정 기능과 선거 제도 개편을 필수로 제시했다. 이어 갈등 조정 기반 교육을 통한 국가적 통합 수준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규제 혁파를 통해 정부 개입이 초래하는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① 규제 없애야 사회통합
중대재해처벌법 시행한 영국
中企만 어려워져 양극화 심화

시장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시장은 타협과 협상을 통해 균형점을 찾아가는 최고의 기제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무시하고 정부 개입과 규제 일변도로 나아가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균형점을 이탈해 왜곡이 발생하고 결국 갈등만 더 악화되기 일쑤다. 특히 규제에 대응할 여력이 없는 영세기업을 집중적으로 타격해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정국의 화두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법안의 모태가 된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이 산업안전 사고를 줄인다는 본연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중소기업에 막대한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 역시 사망사고 등의 중대재해 발생 시 소유주·경영진에게 징벌적인 책임을 묻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빅토리아 로퍼 영국 노섬브리아대 로스쿨 교수는 최근 관련 보고서에서 "법이 도입된 후 산재 사망률이 크게 줄어들지 못했다. 미세한 감소도 그저 장기적인 감소 추세의 일부"라면서 "현재까지 법이 적용된 기업은 전부 중소기업이었으며, 이 가운데 57%는 파산하거나 영업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이유로 법인과실치사법은 영국 내 진보세력으로부터 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법률 대응 조직을 잘 갖춘 대형 기업들이 산업재해를 줄이기보다 규제 회피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중소기업은 법률 조직이 없을뿐더러 소유주·경영진이 중간관리자 없이 중대재해에 직접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아 법 적용이 수월한 특성을 지녔다.


② 국회의장이 갈등 조정자로
의장 직속기구에서 쟁점 조율
신속·지속성에 소수의견 반영

국회의장이 사회통합 책임자로 나서야 한다. 대통령제 아래서 정부 주도 사회통합은 정파성과 결부될 수밖에 없고, 낮은 정부 신뢰도는 오히려 사회통합에 걸림돌이 된다. 반면 국회는 국민이 선출한 대의 기관이기에 타협의 장으로 적합하며, 행정부에 비해 바로 타협을 위한 입법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속하고, 여러 의견을 모을 정파가 모여 있는 만큼 소수 의견까지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국회의장이 당적이 없다는 점은 국회 내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라는 국민적 사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입법이나 주택임대차보호법, 국정원법 개정안 갈등은 국회의장 중재 역할 없이 다수당의 일방 독주로 마무리됐다. 이로 인해 여야 갈등만 깊어졌다. 의장의 입법 갈등 관리 제도가 무력화된 셈이다.

해결책은 국회의장 직속기구를 통해 사회 쟁점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만들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앞장서 정치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제를 만드는 것이다. 국회의장이 여야, 사회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만든 갈등 해결책을 국민 의견 수렴 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식이다.

박준 한국행정연구원(KIPA) 사회조사센터 소장은 "정부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법안을 제출해도 국회에서 재논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책 입안 단계부터 국회가 참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입법부가 나서면 사안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고, 지속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국회 합의안은 향후 정권이 바뀌더라도 영속성이 높은 경향이 있다"며 "국회에서 소수 의견도 반영되는 등 유권자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평했다.

국회의원의 소극적 참여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국민소환제도'라는 견제 장치를 만들 필요성도 제기된다.


③ 통합 인프라 구축하자
작은 분쟁도 시스템으로 해결
갈등 조정 전문가 1천명 필요

한국이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웃 간 갈등 등 눈앞에 있는 작은 갈등부터 조정하는 시스템을 갖춰 사회통합을 위한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이른바 사회적 갈등을 타협으로 이끄는 사회적 자본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 호주, 싱가포르 등 선진국들은 개인 간 분쟁이라도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사회통합의 기초가 된다는 인식 아래 '대안적 분쟁해결법'이나 '주민분쟁해결센터법'을 통해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 후반 '이웃분쟁조정센터'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성공을 거두자 미국 전역에 550개 이상의 '주민조정분쟁센터'로 발전시켜 운영하고 있다. 이웃분쟁센터는 초기에 이웃 간의 사소한 분쟁이나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 소액의 민형사 분쟁을 다뤘지만 현재는 상당히 복잡한 민사 분쟁과 이혼 사건까지 다룰 정도로 영역이 확대됐다. 특히 이 센터들은 자원한 조정인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이웃 간이나 사업, 임대차 관계, 소비자 등 다양한 분쟁에 대한 대안적 분쟁 해결을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민간 분쟁 해결기구가 설립돼 운영 중이다.

싱가포르와 호주도 1990년대 후반부터 이웃 분쟁 조정을 제도화했다. 영국은 치안판사제도를 통해 다양한 분쟁을 해결하고 있는데, 마을의 술집 개업 허가부터 형사사건에 대한 일부 판결까지 시민들이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도 실정에 맞는 분쟁조정센터 운영과 전문가 양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은 전국 분쟁조정센터에서 총 1만2000명 이상의 갈등 조정 전문가들이 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분쟁을 해결하도록 돕고 있다. 인구와 국가 면적 등을 감안하면 한국도 최소 1000명 이상의 갈등 조정 전문가가 필요하다. 미국중재협회의 경우 중재인은 변호사, 전직 판사, 금융업 종사자 등이 포함된다.


④ 초등교육 타협 과목 도입
어릴때부터 갈등해결능력 학습
통합 지향적 문화 만들어질것

사회 대타협을 위해서는 개개인이 어려서부터 타협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법론 등을 배워야 한다. 선진국에서 사회 갈등지수가 낮은 이유 중 하나가 '타협도 학습 대상'이라는 슬로건 아래 초등 교육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미국에서는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개인이 배워야 할 능력이라는 인식하에 초등학생 때부터 공동체, 평화교육, 협상 및 갈등 해결 역량 교육을 정식 공교육 교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를 통해 사전에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 분쟁이 커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회통합이 왜 중요한지, 일방적 편파적 주장의 오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위험성을 어렸을 때부터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통합 교육이 어려서부터 이뤄지면 국민적 통합 소양이 함께 길러져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통합 지향적 문화가 생성될 수 있다고 전했다.


⑤ 지역구 중심 총선 바꿔라
민원에 휘둘려 분열 야기 폐해
다양한 목소리 듣는 장치 필요

국회의원 선출 방식에서 지역구 비중을 줄이고 비례대표 비중을 높이자. 그러면 우리나라 총선이 지역구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나타난 분열과 갈등의 폐해를 완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원 300명은 지역구 253명(84%), 비례대표 47명(16%)으로 구성된다. 지역구 대표가 비례대표보다 5배 이상 많다. 지역구 선출 방식에 소선구제(지역구당 국회의원 1명 선출)가 적용되면서 나타나는 '승자독식'이 정치적 타협을 저해했다. 비례대표 중심의 선거제도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서 착안한 개념이다. 이는 정당별 의석수가 정당에 투표한 비율대로 정해지는 제도다. 총선 결과 제1당이라고 하더라도 의석 과반을 차지하기 매우 어려워 특정 정당의 독주를 근원적으로 차단시키는 게 핵심이다.

[기획취재팀 = 윤원섭 팀장(차장) / 서동철 차장 / 박승철 기자 / 진영태 기자 / 전경운 기자 /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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