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울게 없었나? 김정은, 1만자 신년사 대신 187자 서한

권오혁 기자 2021. 1. 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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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경제난·대북제재 3중고 속 주민 불만 달래려 "인민" 강조
임박한 8차 당 대회에서 구체적 메시지 내놓고 분위기 반전 꾀할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그동안 발표해온 1만 자 안팎의 신년사와 달리 187자 분량의 짧은 친필서한을 공개했다. 2011년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제난 속에서 내세울 만한 뚜렷한 성과가 없는 북한 내부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4일경 개최할 것으로 예상되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문제와 한국 미국을 겨냥한 구체적인 대내외 메시지를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 2019년엔 30분 육성 신년사, 올해는 여섯 문장 친필서한

김 위원장은 노동신문 1일자 1면에 게재된 서한에서 “어려운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이 우리 당을 믿고 언제나 지지해주신 마음들에 감사를 드린다”며 “새해에도 우리 인민의 이상과 염원이 꽃필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기 위하여 힘차게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여섯 문장짜리 서한에서 “사랑하는 인민의 안녕” “위대한 인민을 받드는 충심” 등 ‘인민’을 4차례 언급하며 코로나19, 대북 제재, 경제난이라는 3중고에 직면한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는 데 치중했다. 지난해 신년사 대신 발표한 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과에서 “새 전략무기”를 언급하며 도발을 위협했던 김 위원장은 이번 서한에서 대남, 대미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2011년 집권 이후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간 매년 육성 신년사를 발표해 왔다. 2019년에는 정장 차림으로 가죽소파에 앉아 약 30분간 준비한 신년사를 읽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연하장 성격의 서한을 보낸 것은 김정일 시대인 1995년 이후 26년 만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올해 김 위원장이 대내외에 밝힐 주된 메시지는 당 대회에서 공개될 것”이라며 “이번 친필서한도 공식적인 인사말인 만큼 신년사이기는 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1일 자정 마스크를 쓰지 않은 당 대회에 참가하는 대표들을 대동해 김일성 김정일 시신이 있는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 3중고 직면 김정은, 당대회 통해 분위기 반전 꾀할 듯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임박한 당 대회에서 경제난을 타개할 새로운 대내외 전략을 제시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관심을 돌리고 불만을 잠재워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집권 10년 차를 맞은 김 위원장이 본인과 여동생이자 최측근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지위를 격상시켜 백두혈통 남매에 권력이 집중된 노동당 지배 체제를 공고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5년 전 7차 당 대회에서 김 위원장은 새로 만든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된 뒤 이어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신설된 국무위원장에 올라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당선인에 대한 두 달째 침묵하고 있는 김 위원장이 당 대회를 통해 미국에 어떤 메시지를 발신할지도 주목된다. 핵문제에서는 김 위원장이 핵개발과 핵사용 원칙을 제시해 핵보유국 지위를 재차 강조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기 어려우며 협상하더라도 핵포기가 아니라 핵군축 협상이 돼야 할 것임을 시사할 수 있다는 것. 다만 3중고에 직면한 어려운 대내외 환경을 고려해 한국과 미국에 유화 메시지를 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의 대북 지원을 거부해온 김 위원장이 남북대화를 제의하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할 수도 있다. 통일부는 “남북대화 제의 등 대남 메시지 발신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며 “미국 새 행정부를 의식한 온건 기조의 대외 메시지 전달 및 국제 협력 필요성 강조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80일 전투’를 마친 북한은 7차 당 대회에서 제시됐던 경제발전 5개년 전략에 대한 평가와 함께 새로운 경제 노선도 제시할 예정이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새로운 5개년 계획의 방향이 우리가 기대하는 개혁개방이나 국제사회 협력보단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며 “체제에 대한 충성과 주민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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