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미스터 존스', 동물농장'은 한 저널리스트 고발로 나왔다

강영운 2021. 1. 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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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체제 허상 고발한
언론인 개러스 존스 취재기
우크라이나 대기근 폭로 후
다음해 소련에 납치돼 사망
소설가 조지 오웰에 영감줘
"정치 우상화 경계하라" 메시지
비옥한 우크라이나 흑토(黑土)에 남은 건 깡마른 남자들과 배가 부풀어 오른 아이들뿐이었다. 소설 속 묘사처럼 어른은 아이처럼 줄어들었고, 아이는 어른처럼 늙어버렸다. 1932년 소련 지도자 스탈린이 사회주의 강화를 이유로 펼친 집단화 체제 때문이었다. 힘들게 일군 과실이 집단농장으로 수탈당하자 자영농은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한때의 유럽 곡창지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어른들은 먹을 만한 개미나 곤충이 있을까 싶어 흙덩이를 깨물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죽어버린 형제의 팔다리를 잘라 주린 배를 채웠다. 인재(人災)로 불거진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유럽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스탈린은 서구 지식인들이 존경하는 지도자였다. 나치 독일과의 전면전을 앞둔 그를 선망하는 언론인이 많았다.

소련 체제에 의문을 느낀 기자가 있었다. 영국 웨일스 출신 개러스 존스였다. 영화 '미스터 존스'는 개러스 존스가 스탈린에 의해 가려진 대학살을 취재하는 과정을 담는다. 존스는 히틀러를 최초로 인터뷰한 촉망 받는 언론인이었다. 사물을 통찰력 있게 지켜 본 그가 소련에 의구심을 가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널리즘은 숭고한 직업이에요. 사실을 따라서 어디든 가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의 편도 아니죠."

존스가 처음 모스크바에 발을 디뎠을 때다. 기라성 같은 언론인이 소련에 있었지만, 취재를 하는 이는 없었다. 소련 정부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을 뿐이었다. 스탈린이 제공하는 술과 섹스에 취해 있었다. 그중에는 뉴욕타임스 스타 기자이자, 소련 기획 시리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월터 듀런티도 있었다. "스탈린한테 반항하는 건 기자의 직분은 아니야." 듀런티는 존스를 조소했다.

모두의 만류에도 그는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그가 목도한 건 '노동자의 낙원'도, '위대한 실험'도 아니었다. 자본주의보다 더 나쁜 착취체제의 민낯이었다. 영화는 우크라이나 취재 장면을 흑백으로 처리하며, 참상의 잔혹함을 깊이 있게 묘사한다.

취재 이후에도 보도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소련 정부가 그의 잠입 취재 사실을 알고 다른 영국 기술자 6명을 인질로 삼았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도 동맹국 소련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저에게 기삿거리가 있어요. 근데 이를 말하면 무고한 생명 여섯이 죽어요. 하지만 제가 사실을 말하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살리겠죠." 가까스로 기사를 썼지만, 친소련 기자들이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듀런티는 그를 공격하고 소련을 옹호했다.

존스는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다. 그럼에도 취재를 멈추지 않았다. 1935년 일본이 침략한 내몽골에서 취재 도중 납치돼 사망했다. 그와 함께 있던 가이드는 소련 비밀경찰과 연루됐다고 전해진다. 그의 서른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모두가 그의 고발을 "가짜뉴스"로 매도했을 때 귀 기울인 작가가 있었다. 에릭 아서 블레어, 필명은 조지 오웰. '동물농장'의 시작은 존스의 저널리즘 정신이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명문은 여전히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유효하다. '평등'을 외치며 남들보다 더 평등한 권력이 여전히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어서다.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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