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들이 만든 세상 '실리콘밸리'..모두의 미래가 되다

김슬기 2021. 1. 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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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어폰어타임인 실리콘밸리 / 애덤 피셔 지음 / 김소희 외 옮김 / 워터베어프레스 펴냄 / 2만5000원

오래전에 실리콘밸리는 목가적이며 심심하기만 한 교외 지역에 불과했다. 이곳이 어떻게 '미래'라는 단어의 동의어가 됐을까.

애덤 피셔는 이 지역이 다양성을 포용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전통과 문화가 만들어진 것에서 이유를 찾는다. 이곳에선 거의 모든 이들이 어린 시절 컴퓨터나 게임을 접하고, 해킹이나 컴퓨터에 푹 빠져 컴퓨터과학이나 전자공학을 공부한다. 무엇보다 미래 지향적이고 진취적으로 생각하며, 기술을 중시하고 데이터에 따라 의사결정을 했다. 현실의 문제점을 고민하면서도 이상적인 꿈은 놓지 않는다. 그것도 아주 똑똑하고 유쾌하게. 한마디로 '너드(Nerd)' 문화다. 이 책은 다빈치와 아인슈타인도 역사 속의 너드였다고 부연한다. 너드의 전유물이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번졌을 때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제목이 뜻하는 그대로 이 책은 실리콘밸리에서 신화를 쓴 기업들의 창세기로 빼곡히 채워졌다. 1968년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을 선보인 데모(demo)로부터 시작해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애플을 세운 일,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과 잭 도시의 트위터가 성공하기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복원해낸다. 마법의 순간을 직접 마주한 사람을 수소문해 200명이 넘는 사람을 인터뷰한 이 책은 실리콘밸리가 어떤 문화와 특징을 갖게 됐는지를 생생하게 알려준다. 그것도 등장인물 200명이 일제히 등장해 한자리에서 수다를 떠는 매우 독특한 형식으로 말이다.

너드 문화의 발상지인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 피셔야말로 이 책의 저자로 적임자다. 아타리 게임을 하며 자랐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며 현재는 와이어드, 뉴욕타임스 등에 기술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는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와이어드에서 일하던 시절 뉴욕에서 주류 매체들이 실리콘밸리를 다루는 관점에 그는 의문을 품었다. 요즘 누가 잘나가고 못 나가는지, 누가 억만장자가 됐는지 사업과 돈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고향의 현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저항과 활약과 투쟁과 속임수에 가까웠다. 마치 용을 무찌르는 모험처럼. 그가 영웅들의 이야기로 이 책을 묶어낸 이유다.

태초에 스탠퍼드대가 있었다. 사업에 대해 개방적인 정책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나가서 사업을 하라고 독려하는 학교. 반면 아이비리그는 콧대가 너무 높아 기술과 사업에는 무관심하고 지식과 연구만 이야기했다. 윌리엄 쇼클리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뒤 고향 팰로앨토로 돌아와 연구소를 세웠다. 이 우연이 실리콘밸리 태동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사업이 망해도 신경 쓰지 않고, 사업이 크게 성장하면 더 많은 돈을 부어 넣는 실패를 모두 보상받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덕분에 아이디어와 재능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 불꽃이 튀고, 불길이 타오르면서 인적 네트워크는 점점 커졌다. 사람들은 실리콘밸리 혁신가, 똑똑한 엔지니어, 상품을 기획하는 사람, 마케터, 세일즈 담당자와 같이 일하고 싶어 몰려들기 시작했다. 구글과 야후의 초창기에는 기업 설립을 위해 차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오토바이만 타도 누구나 만날 수 있었다.

페이스북 '좋아요'를 개발한 디자이너 애론 시틱은 말한다. "실리콘밸리를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이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기업으로 보는 겁니다. 각 기업은 그 안에 속한 부서로 보는거죠. 한 부서가 폐쇄돼도 구글같이 성공한 다른 부서로 재배치되죠.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잡스는 1970~1980년대 컴퓨터 전문가는 대부분 시인이거나 작가, 음악가였음에 주목했다. 컴퓨터에 빼진 건 매력적이고 새롭고 신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960년대 밥 딜런을 제외하면 존 바에즈,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등 미국 대부분의 밴드는 이곳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저항 문화와 해커 문화는 1970년대부터 연결고리가 생겼다. 히피와 비트세대, 대안적 라이프스타일, 창의성 등 모든 것이 이 도시에서 만나고 부화되고 퍼져 나갔다.

워즈니악은 아케이드 게임 '아타리'의 창업자 놀런 부슈널이야말로 실리콘밸리 물결의 시초라고 말한다. 반세기 전에 이미 실리콘밸리 최고경영자의 전형을 보여줬던 괴짜다. 또 워즈니악에 따르면 개인이 모두 PC를 휴대할 수 있게 된 아이폰은 결정적 한 방이었다.

트위터 창업자 에번 윌리엄스는 도시 문화에 주목한다. 테크 기업이 점차 문화를 만드는 주체가 되다 보니, 사람들도 점점 도시로 끌리게 됐다는 것. 예술가이면서 엔지니어인 이들이 샌프란시스코에 터를 잡고 도시 자체를 진화시켰다.

이 모든 가설의 접점에 아무래도 실리콘밸리의 진실이 있지 않을까. 잡스의 말이다. "한 산업을 바꿀 무언가를 정말로 창조해내는 사람들은 생각하는 사람(thinker)과 행동하는 사람(doer)을 한 몸 안에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이 난상토론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인터넷 혁명의 중심에 있던 기업들도 초라하게 시작했으며, 끝없는 내외부 갈등을 겪으며 성장하거나 도태됐음을 알게 된다. 넘어지지 않았던 신데렐라는 없었다는 사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마라톤을 하는 것과 같았다.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 된 실리콘밸리를 깊숙이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참고서다. 방대한 두께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될 것 같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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