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발생 76일..우한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이향휘 2021. 1. 1. 16: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한일기 / 팡팡 지음 / 조유리 옮김 / 문학동네 펴냄
"리원량 선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처벌받은 의사 여덟 명 중 한 사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오늘 밤 우한 시민 모두가 그를 위해 울고 있다. 너무 슬프다."(봉쇄 15일 차·2월 6일)

"우한의 지도자는 인민들에게 당과 나라의 은혜에 감사할 것을 요구했다. 정말 기괴한 사고방식이다. 정부는 우선 우한에 있는 수천 명의 사망자 가족들에게 고개 숙여야 한다."(봉쇄 45일 차·3월 7일)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우한이 봉쇄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년 전인 지난 1월 23일이었다. 그로부터 한두 달 뒤 코로나19는 유럽과 미국을 차례로 강타하며 팬데믹(전 세계 대유행)으로 몸집을 키웠다. 지구촌이 고통받는 사이 중국은 또 제일 먼저 이 유폐된 도시의 빗장을 풀며 자축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를 연출했다.

이 모든 과정을 중국 소시민의 눈으로 정직하게 적어나간 한 여성 소설가가 있다. 우한 봉쇄 사흘째부터 해제까지 총 76일간 우한의 참상과 생존기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와 자신의 블로그에 일기로 기록한 팡팡(본명 왕팡·65)이다. 2010년 중국 최고 권위의 루쉰문학상을 수상한 팡팡은 봉쇄 사흘째 되던 날 문학잡지 '수확'의 편집자 청융신으로부터 "우한 봉쇄 일기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중국 당국이 "코로나는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는 공수표를 남발하며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은폐·축소하려던 상황이었다. 코로나19는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였다고 믿은 그는 '진짜' 우한의 상황을 알리고 싶었다.

국내에 출간된 '우한 일기'는 절박한 상황에서 써내려간 공황과 무기력감, 불안, 긴장 등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다. 하루 일과를 날씨와 함께 소개하며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담담하게 전하던 그는 중국 공산당의 시진핑 국가주석 영웅 만들기에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하자 지난 3월 시 주석이 우한을 방문하던 즈음이었다. 그는 "정부여, 당신들의 오만을 거둬들이고 겸허하게 당신들의 주인인 수백만 우한 인민의 은혜라 감사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같은 '사이다 발언'에 그의 웨이보 계정 폴로어는 420만명을 돌파하며 서방 언론의 큰 관심을 얻었다. 중국 내부 일각에서 "저 여자는 미국 민주주의와 페미니즘에 세뇌된 불순한 인간"이라는 공격을 퍼부은 이유다.

긴장을 녹이는 따뜻한 글도 웃음을 자아낸다. 옛 우한 사람들의 노래 가사를 소개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정오까지 잠을 잔 날을 기록한다. "농사일로 분주한 화창한 시절엔 숙면을 취하기가 어렵지. 이제 우리는 아침 내내 잔다네. 오후 내내 잔다네."

[이향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