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포스트 팬데믹]① 버탈란 메스코 박사 "韓, 원격의료 도입 기반 마련해야"

이용성 국제부장 2021. 1. 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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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의 확산과 수용에 속도를 더했다. 휴대용 스마트기기 보급률이 높고 초고속 인터넷이 촘촘히 깔린 한국은 (디지털 기술 기반의) 맞춤형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한 셈이다. 남은 과제는 첨단 의료기술 수용 촉진을 위해 문화적(심리적) 거부감을 극복하고 관련 정책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버탈란 메스코 박사가 코로나19 대응에 활용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메디컬 퓨처리스트

헝가리 출신의 의사이자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인 버탈란 메스코 박사는 세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의료분야의 ‘미래학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5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헝가리의 명문 국립 데브레첸대 의대를 졸업하고 2012년 28살의 나이에 같은 대학에서 유전체(genome·게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공상과학(SF) 소설 마니아인 메스코 박사는 유전체 연구 보다 첨단기술의 의료분야 접목에 관심이 많았다. 관련 분야의 연구와 컨설팅을 위해 그가 이듬해 설립한 온라인 블로그와 소셜미디어 기반의 싱크탱크 ‘메디컬 퓨처리스트(Medical Futurist·의료미래학자)’는 본명보다 유명한 그의 별명이 됐다.

메스코 박사는 ‘메디컬 퓨처리스트'를 통해 등 첨단기술의 발전이 의료분야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의사와 환자, 정부기관, 제약회사 등이 이에 대비하도록 돕고 있다.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등 미국 명문대와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지속가능한 혁신 의료기술에 관해 강의했고, 미국 최고 의료기관 중 하나인 메이요 클리닉의 소셜미디어 기반 의료정보 활용 자문을 맡기도 했다.

그의 2014년 저서 ‘의학의 미래에 대한 안내서(The Guide to the Future of Medicine)’는 AI와 로봇기술, 3D 프린터 등 첨단기술의 접목이 의학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는 지침서로 널리 읽히고 있다. 메스코 박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공공의료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또 다른 신종 바이러스 사태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달라져야 할 점은 뭘까.

"(지역이나 국가 간) 공공의료 네트워크가 잘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개선 해야겠지만 그런 공조 체제의 AI 의존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해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처음 경고한 건 WHO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아닌 캐나다의 AI기반 건강 모니터링 플랫폼 블루닷(BlueDot)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미 세상에는 기술의 도움 없이 인간의 힘 만으로는 분석하기 어려운 방대한 데이터가 존재한다. 의료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어떤 이유로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일상’이 멈춰설 수밖에 없는 만큼 그 중요성을 개인과 국가 차원에서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블루닷'은 AI기반 알고리즘이다. 언론 보도나 동식물 질병 네트워크 등을 통해 취합한 데이터를 분석해 감염병 발생 위험을 경고한다. WHO가 중국 우한의 화난(華南) 수산물도매시장을 중심으로 확산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을 경고한 것은 지난해 1월 9일이었다. CDC는 WHO보다 3일 앞선 1월 6일에 바이러스 존재를 알렸다. 하지만 블루닷은 이들보다 앞선 2019년 12월 31일에 '우한 바이러스' 확산을 알렸다고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와이어드가 보도한 바 있다.

AI의 확산으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퍼졌다. 의료 분야도 예외는 아닐텐데.
"AI가 인간 의사를 대체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AI를 활용하는 의사는 그렇지 않은 의사를 대체할 것이다."

왜 그런가.
"의사의 진료는 ‘선형(linear)’으로 진행되는 단순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 관한 모든 데이터와 정보를 입수했다고 해서 그를 진료하거나 치료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진료는 정보와 데이터 확보 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채로운 작업이다. AI가 초래한 의료 시스템의 혁신이 워낙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의료 분야 종사자들과 (잠재적) 환자들 모두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 관련 변화를 잘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의사들을 양성하는 의대 교과과정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상시적인 건강관리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면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동등한 협력관계'로 변모하고 있다. 이와 함께 건강관리에서 디지털 기술의 역할도 커졌다. 의대에서는 이같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도록 학생들을 이끌어야 한다. ‘메디컬 퓨처리스트'는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의대생들이 처음부터 환자와 긴밀히 교류하도록 할 것, 첨단 기술을 학습에 활용하고 새로운 기술을 서로 공유하도록 독려할 것, 미래의 환자들이 사용할 기술은 반드시 사용하도록 할 것 등이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와 활용능력은 기본이다."

코로나 사태로 병원의 물리적 공간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병원의 공간 구조에도 일정부분 변화가 불가피했다. 입구에서 마스크 착용을 확인하고 체온을 측정하는 등 작업을 수월하게 하고 내부에서 의료진과 직원, 환자들의 ‘거리두기’를 돕기 위한 변화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이런 변화가 오래 지속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병원 건물이 지금보다 더 커지거나 하는 변화는 두드러지지 않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진료와 처방, 투약 기록과 검사 결과 등 임상 정보를 상시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건강관리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증강현실(VR·AR)이나 사물인터넷(IoT) 등도 의료 분야의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되지 않을까.
"개별 기술이 의료 분야의 미래를 바꾸는 힘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내가 변화의 원동력으로 보는 건 다른 두 가지다. 첫째는 환자들이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의료 관련 데이터를 공급하는 주체로서 환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개별 기술을 연계해 구축한 네트워크의 힘이다. ‘건강 인터넷(Internet of healthy things, ‘사물인터넷'에 빗대 붙인 이름)이라 불릴만한 것으로, 질병 예방과 초기 대응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환자와 의사가 화상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트위터 캡처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의료계가 거둔 성과가 있다면.
"팬데믹의 긍정적인 영향을 ‘굳이' 찾는다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보급하고 받아들이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팬데믹이 아니었으면 오랜 시간과 설득을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원격의료와 가정용 진단키트, 스마트 헬스케어 센서 등이 전례 없는 속도로 확산됐다. 초유의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의 여지가 적었기 때문이다."

변화가 빠른 만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 같다.
"디지털 기술 확산 속도에 비해 문화적인(인식의) 변화는 너무 더디다. 원격의료를 수용한 국가에서도 환자와 의사 모두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 시스템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새해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 등을 위한 공조 활성화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얻은 소득이 아닐까.
"팬데믹 이후 제약사와 헬스케어 기업들이 데이터와 인력을 공유하는 등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의학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같은 공조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앞으로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 경우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백신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하는 유일한 방법은 데이터 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데이터 공유가 보편적인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AI를 활용한 데이터 분석 기술의 발전도 물론 중요하다."

한국의 상황은 어떻게 보나.
"휴대용 스마트기기 보급률이 높고 초고속 인터넷이 촘촘히 깔린 한국은 (디지털 기술 기반의) 맞춤형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한 셈이다. 남은 과제는 원격의료 등 첨단 의료기술 수용 촉진을 위해 문화적(심리적) 거부감을 극복하고 관련 정책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은 현행법상 의료인과 의료인 간 협진을 위한 원격의료만 허용된다. 스마트폰으로 진료를 예약하고, 미리 등록해둔 카드로 결제가 가능한 수준이 전부다. 의료계 원격의료의 의학적 안전성이 떨어지고 대기업과 대형병원, 민간 보험사만 배 불리는 정책이라며 원격의료의 본격적인 도입을 위한 법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원격의료는 도서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범사업 외에는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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