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시작 아닌 끝이 되어버린 1월1일

2021. 1. 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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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측, 서비스 품질 저하 이유로
10년 함께한 용역업체 계약 종료
신규 업체는 "고용 승계 불가"
해고된 80여명 "노조 파괴 목적"

[경향신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 분회 전감순 조합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해결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고용 승계가 이뤄져 웃으면서 집에 돌아가겠다고 가족들과 한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새해 첫날 거리로 나선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전감순씨(65)의 올해 다짐이다.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LG트윈타워 로비농성에 들어간 지 16일째가 되던 지난해 마지막 날 밤. 전씨는 설레는 마음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전화로 안부를 묻는 자녀들에게 “새해엔 고용이 승계돼 집에 갈 테니 함께 떡국을 먹자”고 약속도 했다.

2019년 10월 노조를 만들고 난 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면서 더 열심히 건물을 쓸고 닦았다. 앞선 8년간 그랬던 것처럼 계속 고용 승계가 이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1일 오전 9시30분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동료로부터 신규 용역업체인 백상기업이 고용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씨는 새해 첫날 아침도 먹지 못한 채 LG트윈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에 나섰고, 회견 도중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찬 바람 속에 눈물을 훔친 전씨가 처음으로 한 말은 “억울합니다”였다. 그는 “노조를 만들어 관리자의 갑질과 욕설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밖에 없는데 ‘청소의 질이 떨어졌다’며 갑자기 계약만료로 해고됐다”고 말했다.

전업주부로 세 자녀를 키우며 부업과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활비를 벌었던 전씨에게 LG트윈타워는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다. 그는 “수당 떼먹기, 휴일 비상대기 등 갑질을 개선해 행복한 일터로 만들고 싶어 목소리를 낸 것이 그리 잘못된 일인지 LG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분회에 따르면 LG그룹은 자회사인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에 건물 관리를 맡겼다.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건물 청소 업무를 용역회사에 재하청하는데, LG트윈타워의 경우 지수아이앤씨가 10여년간 담당했다. 하지만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지수아이앤씨와 계약을 종료해 노동자 80여명이 2020년 마지막 날 사실상 해고됐다. 전씨가 원청인 LG에 책임을 묻는 이유다.

노동자들은 “사측이 용역계약 변경 시기가 되자 업계 관행도 깨고 정부 권고도 무시하며 집단해고를 밀어붙이고 있다”며 “이는 원청 LG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노조 파괴가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기간제 및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도급사업주가 사내하도급계약 중도해지 또는 계약만료 1개월 이전에 수급사업주에게 통지하고 고용 승계 등의 방법으로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고용 및 근로조건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를 발표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대부분 60대 이상 실질적 가장으로, 해고 이후 생계가 막막한 노동자가 적지 않다. 노조는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해 ‘청소노동자 쫓아내면 LG 제품도 안 써요’ 캠페인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 측은 “계약해지의 가장 큰 이유는 서비스 품질 저하 때문으로 트윈타워 입주사 등에서 불만제기가 이어져왔다”며 “(우리가 관리하는) 타 사업장에도 노조가 있는 상황으로, 노조에서 말하는 노조 결성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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