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되는 매일의 운명, 피할 수 없다면 읽어라 [책과 삶]

배문규 기자 2021. 1. 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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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무엇이 좋은 삶인가
김헌·김월회 지음
민음사 | 356쪽 | 1만8000원

“고전이란 모든 사람이 칭찬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마크 트웨인) 사람들은 고전에 온갖 지혜가 담겨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읽지는 않는다. 시도는 해보지만 중간에 포기한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서양고전학자인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솔직히 저도 읽다가 중간에 덮은 책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무뚝뚝한 표정의 고전 몇 권을 읽고 또 읽으면서, … 세상을 살아가며 부딪힌 아픈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말한다.

인생의 물음들은 화두라는 말로 바꾸어볼 수 있다. 살다 보면 마주하는 화두를 누구는 외면한 채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화두로 자기 삶을 풍요롭게 일궈내기도 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화두와 ‘함께함’의 저력”이다. 중문학자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핵심은 살아가다가 이들 화두와 마주했을 때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곱씹어보며 그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구축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헌(왼쪽)과 김월회.

<무엇이 좋은 삶인가>는 두 인문학자가 12가지 화두를 동서양 고전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명예, 행복, 부(富) 등 삶 속 화두들에 대해 고전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내 인생에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본다. 여느 자기계발서들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의 비밀이나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비책을 주워섬기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들에 대해 ‘정답’은 아니더라도, 저마다의 ‘명답’을 찾도록 이끈다.

해가 바뀔 때면 운명과 같은 관념적인 단어들을 곱씹게 된다. 역병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옛 그리스 사람들은 ‘모이라’라는 말에 각별한 의미를 두었다고 한다. 모이라는 여러 사람들이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눌 때, 각 사람에게 나누어진 몫이었다. 삶에서는 각자의 몫으로 정해진 수명을 가리키기도 했다. 이러한 삶의 몫은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 여겼고, 운명을 결정하는 제우스의 딸들을 ‘모이라’ 여신이라 불렀다. 자신의 몫을 소홀히 하거나 다른 이의 몫을 탐하는 것은 불경한 짓이었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정의(正義)를 ‘각자에게 합당한 제 몫을 주는 것’으로, ‘주어진 몫에 충실하고 자신의 역할에 탁월한 것’을 덕으로 여겼으며, 덕을 실천하는 사람이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나쁜 운명이라도 그저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무엇이 좋은 삶인가>는 동서양 고전을 통해 단단한 삶의 방식을 탐구한다. 책에는 사진작가 구본창의 ‘인테리어’ ‘화이트’ ‘DF’ 연작 12점을 실었다. 사진은 ‘DF 1-05’로 화려한 순간을 지난 마른 꽃을 통해 삶의 의미와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구본창·민음사 제공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은 심각한 물음을 던진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하는 운명을 타고난 오이디푸스. 그에게 과연 죄를 물을 수 있을까. 그들이 운명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신탁을 거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운명일까. 여기서 김헌 교수는 유치환의 시 ‘너에게’를 떠올린다. “운명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음이 운명이니라.” 오이디푸스처럼,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나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결국 운명을 만드는 힘”인지도 모르겠다고,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고결하게 판단하고 용감하게 실천’했던 오이디푸스는 원하지 않던 길로 향하고 말았지만, “그는 위대하다”고 김헌 교수는 말한다.

진시황은 왜 장성을 쌓았을까. 불로장생의 영약을 찾아 동해로 떠났던 노생은 신선에게 받았다는 기서(奇書)를 바쳤다. 그 책에는 “진을 망하게 할 자는 호(胡)”라는 구절이 들어 있었다. ‘호’는 북쪽의 오랑캐. 진시황은 흉노를 내쫓은 다음 만리장성을 쌓았다. 하지만 막상 진은 그의 아들 호해(胡亥)로 인해 급속하게 기울더니 한을 세운 유방에게 망했다. ‘호’는 오랑캐가 아닌 자신의 열여덟째 아들 호해를 가리켰던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진은 정말 신탁 때문에 망했을까. 당시 상황을 보면, 흉노 축출과 장성 수축은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시황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멸망 원인이 그렇게 지목된 것은 진시황 사후 진이 금방 멸망했기 때문이다. 끝을 보지 않고서 한 사람이나 사회의 운명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인간 대 운명’의 구도를 짜면 인간은 운명 앞에 필패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운명에서 벗어나 ‘노력 대 진리’의 구도를 짜면 어떨까. 하늘의 섭리는 진리이지 운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진리를 따르는 삶은 열려 있다.

맹자는 도리를 다하고 죽는 것을 ‘정명(正命·올바른 운명)’이라 했다. 그가 보기에 운명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이 노력함으로써 완수되는 것이었다. “사람은, 하늘이 매일같이 새롭게 주는 명을 받아 그것을 그날그날 이뤄 갈 줄 아는 존재”이다. 김월회 교수는 말한다. “변이되는 운명에 충실한 매일의 삶은 언뜻 반복처럼 보이지만, 오늘은 분명 어제와 또 다른 하루라는 점에서 그렇게 차이를 빚어내기에 삶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이렇게 차이를 생성하는, 살아 움직이는 ‘낳고 또 낳는(生生)’ 나날의 삶, 그것이 바로 운명의 바깥을 일궈낼 수 있는 터전이다.”

기대와 어수선한 마음이 교차하는 새해 첫머리. 고전을 종횡무진하는 읽기 여정이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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