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님'이라는 호칭은 왜 어색할까

2021. 1. 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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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나이 차별적인 언어 문화에 맞서며

[이은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지음 ]
많은 이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는 물론, 길거리에서 나이가 상대보다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반말을 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과거에 비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초면이거나 공식석상에선 경어 등을 사용해 예의를 지키고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이가 어린 사람은 반말을 듣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다. 특히 어린이·청소년에 대해서는 이러한 모습이 더 자주 나타난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물론이고 공적인 자리에서도 나이가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예의'는 갖춰지지 않곤 한다.

특히 많은 청소년들이 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공적 공간인 학교에서도, 나이가 적단 이유로 반말 등 하대를 당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교사와 학생 또는 상급생과 하급생 사이에서 나이가 적은 쪽은 존댓말을 쓰고 나이가 많은 쪽은 반말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나이에 따라 위계가 생기는 언어 표현을 우리는 왜 당연하게 받아들일까?

'학생님'이라는 호칭은 왜 어색할까

몇 년 전 고등학교를 다닐 때, 교육청으로부터 각 학교로 학생에게 반말을 사용하지 말고 경어를 사용하라는 공문이 온 적이 있다. 어느 교사는 교실에 와서 화가 난다는 듯이 이젠 교육청에서 별 공문을 다 보낸다며 구시렁거렸다. 그는 "이제는 학생에게 반말하지 말라고 그러네. 아주 '학생님'이라고 불러야 되겠어?"라며 비아냥거렸다. 그 공문은 학교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체벌 등의 학생인권 침해에 대해 교육청에 민원이 제기되어서 나오게 된 것이었다. 학생인권 침해에 대한 대책으로서 학생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학생에게 반말을 쓰지 말라는 공문에 반발하던 그 교사는 학생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학생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언어 문화와 학생에게 함부로 대하고 폭력을 가하는 문화는 연결되어 있다.

사실 교사와 학생은 공공기관인 학교에서 만난 상호 존중해야 할 공적인 관계이다. 사람에 따라선 개인적으로 친해질 수도 있겠지만, 수업과 같이 여러 사람이 함께하고 있으며 공적인 상황에서는 서로 예의를 갖추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예의'는 한쪽에게만 요구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교사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반말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수용하며, 교사가 학생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에도 관대하다. 학생은 교무실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용의복장까지 다 가지런히 하라고 요구받을 정도로 과하게 예의를 요구받는다. 일상적 호칭의 측면에서도 교사는 '선생님'이라 불려야만 하지만, '학생님'이란 호칭은 매우 어색하다. 왜 교사는 학생에게 비슷한 정도로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괜찮을까.

이는 우리가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나이나 신분에 따른 상하관계를 전제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해야 할 의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한쪽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예의와 나이 차별적 언어 문화는 어린이·청소년들이 '아랫사람'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요소이며 차별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

2003년, MBC의 '느낌표'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업 시간에 존댓말을 사용하는 교사를 소개하며 선물을 주는 내용을 방영한 적이 있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 인격을 존중하는 풍토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당시 많은 논란과 반발에 부딪혔다. '교사 죽이기'라는 표현을 써 가며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꼭 존댓말을 써야만 학생을 존중하는 것이고, 학생에게 반말을 하면 무조건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냐는 반발이 많았다.

하지만 만일 학교장이나 장학사가 교사에게 반말을 하면서 교사를 무시하는 태도는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 말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학생이 교사에게 반말을 하면서 그래도 선생님을 존중한다고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되묻고 싶다. 교사는 학생에게 반말을 쓸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 반면, 학생은 교사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애초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학생을 존중하려 노력한다는 교사도 별 생각 없이 학생에게 반말을 쓸 수도 있다. 존댓말과 반말의 사용 여부가 교사 개인의 자질이나 태도를 평가하는 절대적 잣대가 되긴 어렵다. 그럼에도 어린이·청소년에게는 일방적으로 반말 등 하대를 해도 된다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분명 어린이·청소년을 평등하게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위치시키는 차별적인 것이다. 즉, 교사 개개인이 문제란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반말을 해도 되는 차별적인 문화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차별적 언어 문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꾸기 위한 실천 중 하나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평등한 언어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어린이·청소년에게 하대하는 문화를 비판하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고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는 반말을 쓰는 것이 한국의 문화이지 않냐는 반문이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언어 문화가 아니다.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사회 질서를, 나이주의를 드러내고 재생산하는 요소이다.

예컨대 일방적으로 반말을 듣는 것은 과거 한국 여성들에게도 해당되었던 문제였다. 결혼한 여성이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존댓말을 사용하는 모습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친인척들의 호칭을 보면 남편 측과 아내 측 가족에게 붙여진 호칭 사이에 위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남존여비의 인식이 옅어지고 성평등을 강조하게 되면서 이러한 문화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외국 영화를 번역할 때도 여성만 존댓말을 쓰도록 옮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오면서 사라지는 추세이다. 여성을 아랫사람으로 바라보는 언어 문화를 바꾸는 과정을 겪었듯, 어린이·청소년을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언어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맞장토론이 가능한 사회를 바라며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이 낮춰지고 청소년 참여권 보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등 청소년이 우리 사회에 시민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으로나 정부 기구를 통해서나 청소년이 정책을 제안하고 공적으로 발언할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이 평등한 시민으로 함께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변화뿐만 아니라 문화적 변화도 필요하다. 형식적으로는 같이 참석하고 있더라도, 청소년을 은연중에 아랫사람으로 보며 존중하지 않는다면, 청소년들의 참여는 위축되고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

2020년 12월, '인권교육센터 들'이 발표한 〈18세 선거권 시대, 청소년은 어떻게 시민이 되는가〉 연구 보고서에도 "청소년을 가르칠 대상으로, 아랫사람으로 생각하는 수직적 관계에서 시민 대 시민으로 만나는 제대로 된 토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보고서는 "평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관계에서 청소년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의 어려움"이 있음을 지적하며, '학생을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교육'을 청소년 시민의 주체 형성 방해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청소년의 참여를 보장하고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전 사회적으로 청소년을 평등한 시민으로 대우하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일방이 차별받고 하대당하는 관계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잘 말하기 위해서, 그 목소리가 같은 크기로 들리기 위해서 어린이·청소년이 존중받는 일상의 언어 문화가 필요하다. 어린이·청소년이 사회에서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제도를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어린이·청소년 향한 나이 차별적 언어 문화에도 맞서야 한다. 그 출발점으로, 학교는 물론 공공기관이나 공공장소에서 어린이·청소년에게 하대하는 문화를 없애고 나이에 관계없이 평등하고 서로 존중하는 언어 문화를 확립할 것을 제안한다.

[이은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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