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미스트롯] 너무나 멋진 그녀에게 하트 하나를 더 얹어주었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1. 1. 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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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하던 정신으로 노래하고
'올 하트'에 부둥켜 안고 글썽이는
트로트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미스트롯 3회. 탈북맘 전향진 출연자./tv조선

압록강 건너 탈북한 정신으로 노래한다고 했다. 다섯살 먹은 아들이 울거나 소리를 낼까봐 수면제를 먹여 강을 건넜다고 했다. 그녀는 나훈아의 ‘녹슬은 기찻길’을 불렀다. “휴전선 달빛 아래/ 녹슬은 기찻길/ 어이해서 핏빛인가/ 말 좀 하려마” 아무 것도 모르는 아들이 엄마의 어깨를 으스러지게 붙잡았다더니, 가수의 목소리도 으스러지게 처절했다. 화려한 의상과 퍼포먼스로 무장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오로지 트로트 창법과 정서로만 내뱉은 그녀, 전향진의 무대가 가장 돋보였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란 사실을 천둥처럼 알려주는 라이브였다.

미스트롯 3회 - 트윈 걸스./tv조선

어젯밤 ‘미스 트롯’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경력과 사연을 지닌 사람들의 무대였다. 목청으로는 승부를 가릴 수 없을 것이라고 짐작한 참가자들은 춤과 의상과 동작으로 자신의 기량을 드러냈다. ‘올 하트’를 받은 쌍둥이 자매는 무대 위에서 부둥켜 안고 눈물을 글썽였다. 대체 얼마나 간절했기에 1등을 한 것도 아니고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칭찬을 받은 것만으로 저렇게 감격할 수 있을까.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받는 것이 가수의 일상일진대, 젊은 자매의 짧은 노래 인생이 그만큼 누군가의 인정을 갈망해왔다는 뜻일 것이다.

미스트롯 3회 -초등부 김지율/tv조선

초등학생이 부르는 트로트는 항상 경이롭다. 김지율이란 어린 참가자는 ‘한 많은 대동강’을 불렀는데, 70년 전 전쟁 때 평양을 떠나온 실향민의 피맺힌 한을 21세기에 태어난 아이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편지 한 장 전할 길이/ 이다지도 없을소냐/ 아 썼다가 찢어버린/ 한 많은 대동강아” 같은 가사로 노래하는 아이에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은 트로트라는 한국인만의 장르가 갖고 있는 힘이다.

변혜진이란 참가자는 하트를 6개밖에 받지 못해 이날 무대에서 탈락했다. 아이 둘의 엄마라는 그녀는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을 뽐내며 “주부들이 저를 보고 다른 꿈을 꾸기 바란다”고 했다. 그의 노래는 과연 올 하트를 받기에 부족하게 들렸으나, ‘미스 트롯’을 보는 이유가 노래 잘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멋진 사람들을 보는 재미라는 점에서 나는 그녀에게 하트 하나를 더 얹어주었다.

미스트롯 3회 .이보경 출연자./tv조선

엄청난 경쟁을 뚫고 본선에 오른 가수들인데도, 목 근육을 쥐어 짜야 트로트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어떤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지 아닌지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고음을 올릴 때 관자놀이와 목에 힘줄이 과하게 돋는지 보는 것이다. 뱃속에서 소리를 끌어 올려 미간으로 뿜어내는 가수들은 굳이 핏대를 세우지 않는다. 버블디아라는 참가자는 화려한 고음 창법을 드러내려고 ‘비와 외로움’이란 노래를 골랐다. 세 옥타브를 오르내리는 이 어려운 노래의 후렴구를 아예 초반으로 끌어와 터뜨렸는데, 모든 장음을 두 단계로 끌어올리는 바람에 그 패턴이 금세 지루해졌다. 고음은 가창력의 충분 조건일 뿐 필요 조건은 아니다. ‘나뭇잎 사이로’를 부른 조동진이 단 한번도 고음을 낸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 좋은 가수와 가창력의 상관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하광훈이 작곡한 패티김 노래 ‘그대 내 친구여’를 부른 이보경도 ‘올 하트’를 받았다. 패티김처럼 성량이 풍부했고 창법과 호흡법도 기본적으로 성악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트로트 경연에서 패티김 노래를 패티김처럼 부르고 ‘올 하트’를 받는 게 과연 타당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걸그룹 출신 한초임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 ‘톡식(Toxic)’까지 끌어와 아크로바트 실력을 뽐냈지만, 역시 트로트 경연 무대와는 결이 달라 ‘올 하트’를 받는 데 실패했다.

국악을 했거나 발라드로 이미 유명하다는 참가자들 가운데 호흡이 불안정해 듣는 사람을 조바심 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마디마다 숨을 쉬거나 심지어 마디 중간에 숨을 들이마시면 트로트의 흥이 깨지는 법이다. 이런 지적을 하는 심사위원이 없어 의아했다. 쌍둥이 참가자들이 다섯 팀 소개됐는데 무슨 이유인지 두 팀만 무대를 볼 수 있었다. 어린 쌍둥이도 있었고 외국인 쌍둥이도 있었기에 궁금했지만 볼 수 없었던 점은 프로그램 연출과 편집의 흠으로 남았다.

작곡가와 가수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이 이모저모를 따지며 심사평을 내놓았지만 시청자로서 가장 와닿은 심사평은 관록의 배우이자 성우인 김영옥의 반응이었다. “어우, 너무 좋다.” 그것이 국민 30%가 지켜보는 ‘미스 트롯’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도 단순한 소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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