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 해 평안 기원하는 '힙'한 조선의 달력이 왔다

강지원 2021. 1. 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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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전 우리는 어떤 것을 희망했고, 어떤 삶을 살고 싶었을까요."

달력에 삽입된 민화는 한국민화협회 소속 작가 5명(김경희 유종구 정다연 최유담 지예정)이 참여해 완성했다.

안 회장은 "민화를 그대로 달력에 붙였다면 '민화가 붙은 달력'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우리는 민화에 나오는 대상에 주목해 의미를 살리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힙(감각적인)한 민화 달력'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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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성대를 기원했던 민화 '구추봉도'에 나온 봉황을 1월 달력에 그려 넣었다. 느루 제공

“300년전 우리는 어떤 것을 희망했고, 어떤 삶을 살고 싶었을까요.”

당찬 반문이 돌아왔다. 최근 조선시대 민화를 소재로 신년 달력을 만든 이화여대 사회혁신비즈니스 동아리 ‘느루’의 안유민(24) 회장은 31일 전화 인터뷰에서 민화 달력을 만든 이유를 묻자 질문으로 답했다. 이어 그는 “사실 젊은 세대들은 전통문화를 잘 모르고, 관심도 많지 않다”라며 “민화는 서민의 삶을 그린 그림이어서 이들에게 전통문화를 쉽고 친숙하게 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 4월부터 이화여대 재학생 12명이 팀을 이뤄 만든 민화 달력은 최근 크라우드펀딩사이트인 텀블벅에 올려 3주만에 목표금액(100만원)의 2배가 넘는 성과를 냈다. 지금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꾸준히 판매된다. 최근 전통문화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하는 트렌드와도 맞물린다. 한국의 판소리를 재해석해 현대 음악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 팝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기반으로 만든 한국관광공사의 홍보영상이 대표적이다.

손바닥만한 엽서 사이즈(15X21㎝)로 제작된 달력은 민화에서 차용한 새와 꽃, 호랑이, 바위, 나무 등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달력에 삽입된 민화는 한국민화협회 소속 작가 5명(김경희 유종구 정다연 최유담 지예정)이 참여해 완성했다.

이화여대 사회혁신비즈니스 동아리 '느루'의 심효진, 김혜원, 안유민, 전민정씨가 지난달 31일 직접 제작한 민화 달력을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느루 제공

'느루'는 월별로 어울리는 민화를 선정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민화를 통해 태평성대, 가정의 평안 등을 기원했던 옛 조상들의 의미도 살려 월별로 적절하게 배치했다. 가령 한 해를 여는 1월에는 모두가 태평성대하고 평안한 한 해를 보내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구추봉도(九雛鳳圖)에 나오는 부모 봉황과 아기 새 아홉 마리를 그려 넣었다. 2월에는 사랑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민화 화조도(花鳥圖)의 붉은 꽃과 하얀 새를 새롭게 해석했다. 용맹한 호랑이를 그린 맹호도(猛虎圖), 학이 뛰노는 도원을 그린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 지조와 절개를 의미하는 매화화병도(梅花花甁圖) 등 다양한 민화가 바탕이 됐다.

안 회장은 “민화를 그대로 달력에 붙였다면 ‘민화가 붙은 달력’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우리는 민화에 나오는 대상에 주목해 의미를 살리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힙(감각적인)한 민화 달력’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민화 달력은 '달력은 벽에 걸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인테리어 소품처럼 활용할 수 있다. 느루 제공
호랑이를 그린 '맹호도'는 민생의 고초를 막고자 하는 희망을 담고 있다. 느루 제공
조선시대 서민들이 태평성대와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며 그렸던 민화를 소재로 한 민화 달력. 느루 사회관계망서비스(인스타그램 아이디 newroo_official)를 통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느루 제공

달력을 작은 그림이나 소품처럼 인테리어 용도로 활용하는 젊은 세대들의 취향에 맞춰 크기를 조정하고, 그림처럼 보관할 수 있게 구멍을 뚫는 대신 원목받침대를 제작했다. 스티커 등으로 자신만의 달력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수요에 맞게 민화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도 함께 제작했다. 안 회장은 “젊은 세대들이 달력을 단순히 날짜를 확인하는 용도 외에 날짜가 지나도 그림처럼 활용하거나 보관한다는 점을 반영해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일반 달력의 판매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달력에 담긴 의미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안 회장은 “꼭 고궁이나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일상에서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전통문화인 민화를 젊은 세대들이 일상에서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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