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으로 향하는 인간의 역사[동아시론/한동일]
살아 숨쉬는 공동체 역동성의 증거.. 절망의 지난해 딛고 희망 회복하자
그런데 우리는 지난해 지구상에서 ‘더 나은 곳’, 적어도 ‘더 낫다고 생각하는 곳’을 잃어버렸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며 누적 사망자가 170만 명을 넘어서는 가운데 ‘더 나은 곳’ ‘더 안전한 곳’이 없어진 것이다.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나라들에서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사상자가 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한때 한 사회와 국가의 성장동력이 되었던 저력이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는 데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코로나 시대를 통해 한 사회가 가진 어제의 장점이 오늘의 단점이 되고, 오늘의 단점이 내일의 장점이 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장점이고 단점인가 하는 구분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개인이든 사회든 나, 혹은 우리 중심의 자기 확신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이제까지 밖을 의식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우리 안에서 성찰하고 가능성을 발견하며 가지를 뻗어나가야 한다. 뿌리를 잘 내리고 땅을 단단히 다지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언제든 자라기 마련이다.
얼마 전 식사를 하다가 어금니를 감싸고 있던 크라운이 툭 하고 떨어져 나왔다. 하필 치과도 문 닫은 금요일 저녁이어서 구강세정기로 잘 씻어낸 후 자세히 보니 어금니가 다 썩어 없어진 부분이 휑하니 드러났다. 이렇게 썩어서 부러질 때까지 몰랐다니 좀 이상했지만, 그도 그럴 것이 신경치료를 한 후 크라운을 씌운 터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이를 통해 통증이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통증에는 분명한 역할이 있었다. 내게 병이 생겼을 때 내 몸은 특유의 방어력으로 여러 가지 증상을 보이는데 가장 흔한 것이 어딘가 아픈 증상이다. 통증은 인체에 병이 생겼으며 현재 내 몸이 싸워서 치유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하루하루 조용한 날이 없는 것 같은 우리 사회를 두고 갈등과 긴장이 가득하다고 불만스럽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 그것을 더 시끄럽고 피곤하게 느낄 수 있지만, 그건 다시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살아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삶의 조건과 환경’을 찾아 나서는 인간 본능의 발로이며 오히려 건강한 사회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문제는 그러한 갈등과 긴장이 소란스럽게 매일매일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너의, 누군가의, 사회의 아픔이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아픔, 한 공동체의 아픔을 찬찬히 헤아리기보다 ‘네가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니다. 나를 볼래?’라는 식의 더 세고 더 큰 아픔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상대의 아픔을 덮으려는 방식이라면 길이 안 보인다.
어느 사회나 문제는 있고 통증도 수반한다. 얼핏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나라도 한 걸음만 더 깊이 들어가 바라보면 심각한 문제들을 하나같이 다 가지고 있다. 그래도 문제를 두고 누구라도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라면 괜찮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가 ‘좀 나은 사회’라고 생각하는 데서 희망은 출발하리라 본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은 절망의 지난해를 떠나보내고,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희망이다. 각계각층의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다양한 예측과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더 나은 곳,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바람만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인간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팬데믹’을 극복해왔다. 이번에도 이겨낼 것이다.
“희망만이 고통을 겪는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Spes sola hominem in miseriis consolari solet·키케로, 카틸리나 탄핵)”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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