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신춘문예] 가정과 청춘, 그 이상의 의미를 절묘하게 확장

정수자·시조시인 2021. 1. 1.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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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부문 심사평
정수자·시조시인

모두가 힘들 때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무력감을 뚫고 닿은 응모작들에서 위기를 양식 삼아온 문학의 오랜 힘을 다시 본다. 많은 응모자가 정형시의 미래를 새로 쓰려는 듯 긴 고투의 시간들을 투고해왔다. 그런 마음의 갈피에서 문학의 본연을 돌아보며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 읽었다.

끝까지 되읽게 한 작품은 ‘파우치’, ‘먼저 끊으면 안 되는 전화’, ‘자이로 나침반’, ‘붉은색 동화’, ‘닻별’, ‘부여’ 등이었다. ‘파우치’와 ‘붉은색 동화’는 역동적인 언술이나 표현의 확장성에 비해 발효되지 않은 관념과 진술의 과잉이 걸렸다.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버무린 ‘먼저 끊으면 안 되는 전화’나 형식에 어울리게 시적 조율을 해낸 ‘자이로 나침반’의 시인은 계속 시조에 집중할지,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닻별’은 의욕적이나 비슷한 표현들이 초래하는 이완의 노정으로 내려놓았다. 이런 지적을 넘어서는 마지막 작품으로 ‘부여’를 들어 올렸다.

당선작 ‘부여’는 정형의 간명한 구조화와 형상력이 빼어나다. ‘아버지와 어색하다 식탁이 너무 넓다’거나 ‘날개 뜯긴 잠자리처럼 눈알만 굴려댄다’ 같은 묘사는 요즘 가정과 청춘의 압축으로 절묘하다. 비유도 적실해서 ‘유적’/‘유서’, ‘잠자리’/‘잠자리’, ‘찬란’/‘환란’ 등은 언어유희 이상의 의미 확장을 견인한다. 특히 ‘밥을 꼭꼭 씹었다’는 대목은 단순하지만 단순치 않은 촉발로 뭔가 시작하려는 다짐과 암시를 오롯이 빚는다. 코로나19처럼 어느 힘든 상황에 대입해도 좋은, 밥의 힘을 조촐히 빛내는 것이다.

황바울씨의 당선을 축하한다. 시조도 꼭꼭 씹으며 더 심화해가길 바란다. 다시 시조를 다잡을 응모자들께도 더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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