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그래서 부자 되셨습니까

김은정 경제부 차장 2021. 1. 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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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개미/일러스트=김성규

지난 2020년 한국 경제를 움직인 최고의 인물로 ‘동학 개미·서학 개미’를 꼽으련다. 코로나 1차 대확산으로 주가가 급락했던 3월, 개미 군단은 겁도 없이 증시에 뛰어들었다. 이들이 국내 증시에 쏟아부은 돈이 약 64조원. 미국 등 나라 밖 주식도 21조원어치 사들이며 가본 적 없는 투자 여정을 떠났다.

개미들이 얼마를 벌었는지 정확히 계산하긴 어렵다. 각기 다른 시점에 다른 액수를 넣었던 데다, 팔고 나온 때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3월 폭락 후 연말까지 개미들이 많이 사들인 삼성전자·네이버 같은 주요 종목이 70~80% 폭등했으니 상당한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식시장에 개미가 있었다면 부동산 시장엔 ‘영끌 2030’이 있었다. 집값 잡겠다는 정부가 연거푸 헛발질 대책으로 집값을 밀어올리니 젊은이들은 수억원씩 빚내 집을 샀다. 지금 아니면 영원히 임대주택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등을 떠밀었다. 32세 회사원 이모씨도 지난 6월 전세금 1억5000만원에 4억원 풀 대출을 받아서 5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수많은 이씨가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니 집값은 더더욱 올랐다. 2020년 전국 집값 상승률은 8.4%, 서울은 10.7%에 달한다. 이씨의 동대문구 집도 6개월 새 5000만원이 올랐다. 이때 사지 못한 이들은 땅을 치고 후회한다.

그래서 개미와 영끌족은 모두 행복해졌을까. 가진 자산 가치가 오르면 소비도 늘어나는 게 정상. 경제학에선 이런 함수관계를 ‘부(富)의 효과’라 부른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집 같은 실물 자산이 주식 같은 금융 자산보다 큰 부의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만큼은 부의 효과는 온데간데없이 소비가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일단 빚을 너무 많이 냈다. 가계가 진 빚이 나라 전체 경제 규모마저 넘어버렸다. 여윳돈이 넘쳐 그야말로 투자 목적으로 나선 사람도 있겠지만, 먹고살 길 막막해서 빚내 필사적으로 뛰어든 경우도 많았다. 배달 사이사이 잠깐 그늘에 쉬면서 스마트폰으로 주가 그래프 보던 택배 기사, 분리수거를 도우면서 증권 방송 듣던 경비원….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돈 벌면 빚 갚을 일부터 걱정이다.

어떤 이들은 내야 할 세금이 너무 많아져서,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어도 모든 집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많은 이가 재테크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치 사이버 머니처럼 화면에 찍힌 숫자만 불어났을 뿐이다.

급등한 자산 가치를 소비로 이어지게 하는 선순환이 올해 2021년 경제팀 앞에 놓인 난제다. 배달 음식 네 번 시켜 먹으면 1만원 주는 그런 대책 말고, 멈춰선 실물경제 곳곳에 온기와 활력을 불어넣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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