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1] 진보 지식인의 변절

신상목 2021. 1. 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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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1836~1916)는 메이지 시대의 정치학자, 교육가이다. 그는 막부의 번서조소(蕃書調所)에서 양학(洋學) 교관으로 근무하며 일찍부터 서구의 정치사상·제도를 연구한 신지식인이었다. 메이지 신정부에 임용된 그는 출중한 외국어 능력을 바탕으로 정치 개혁에 관한 다수의 논문, 제언을 남기며 왕성하게 활동한다.

계몽사상의 대명사인 메이로쿠샤(明六社)의 일원으로도 활약한 그의 초기 사상은 한마디로 ‘천부인권설’이었다. 그는 ‘인간은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존재이며, 인간에게 만복을 내리는 것이 하늘의 뜻’임을 공리(公理)로 세우고 자유·평등·입헌주의 등 서구 정치 개념을 도입하여 정치 개혁을 논하였다. 히닌(非人)·에타(穢多) 등 천민제 폐지를 건의한 것도 그였다. 동시대에 가토보다 진보적인 정치학자를 찾기 힘들었다.

민선(民選)의원 설립 운동이 일어난 1874년, 많은 지식인이 민선의원 설립을 지지했지만, 가토는 ‘시기상조론’을 주장하며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다. 입헌론에 입각한 ‘상하공치(上下共治)’를 주장하던 가토의 뜻밖의 반응에 지식계는 당혹한다. 그는 1882년 ‘인권신설(人權新說)’에서 아예 천부인권설을 부정하면서, 역사는 ‘우승 열패’의 원리에 의해 진화하며, 승자인 국가의 시혜로 인민의 권리가 창설·보장된다는 사회진화론을 주장한다. 만세일계의 ‘천황제’는 진화론 법칙상 우수성이 입증된 군주제로서, 그 속에서 일본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존재한다는 그의 주장은 일본인들이 자신의 존재 의의를 천황의 보위와 직결시키는 일본 특유의 국가유기체적인 파시즘의 단초를 제공한다.

겉으로는 사민평등을 내세우면서도 특수 계급을 창설하고 천황을 방패 삼아 집권과 축재에 혈안이 된 번벌(藩閥) 귀족에게 천황 중심 국가주의로 시민적 자유·권리의 의미를 왜곡하는 가토와 같은 ‘지식인’의 존재는 유용한 것이었다. 가토는 남작에 서작(敍爵)되며, 제국대학 총장, 제국학사원장 등 온갖 영예로 그의 지적 기여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 권력과 야합하는 퇴행적 지식인의 폐해를 경계하지 않는 사회는 언제든지 퇴보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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