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전후 세운 土牛.. 농사와 풍년의 상징

허윤희 기자 2021. 1. 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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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신년특집 - 辛丑年, 소를 말하다] 우리 전통문화 속 '소'
소띠 새해를 나흘 앞둔 28일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 봉성농장에서 쌍둥이 송아지인 ‘희망이’와 ‘소망이’ 자매가 체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소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가축 중 하나다. 기원전 6000년쯤 서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인간에 의해 길들여졌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눌지왕 22년(438년) 백성에게 소로 수레 끄는 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고, 지증왕 3년(502년) 소를 써서 논밭을 갈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소는 우리 민족에게 오랫동안 ‘일소’였다.

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흰 소의 해다. 흰색에 해당하는 천간 ‘신(辛)’과 소에 해당하는 ‘축(丑)’이 만났다. 느린 걸음과 큰 몸짓, 힘든 일도 묵묵히 해내는 소는 우직함과 편안함, 근면, 자기희생의 상징이 됐다. 목동이 소를 타고 가는 그림에선 세속을 벗어난 여유가 느껴지고, 문학 작품 속 소는 고향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농경 사회에선 논, 밭과 함께 중요한 재산이었다. “소 팔아 자식 대학을 보냈다”는 말처럼 소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비상 금고의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비꼬아 부르기도 했는데, 농가에서 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십이지신도’ 중 축신(丑神). 19세기 말~20세기 초. /국립민속박물관

소는 권농과 풍년을 상징하기도 한다. 입춘 전후 흙으로 만든 소 인형인 토우(土牛)나 나무로 만든 목우(木牛)를 세우던 행위에서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고 풍년을 기원하는 조상들의 바람을 볼 수 있다. 정월 초하루 새벽에 소가 울면 그해는 풍년이라 여겼고, 정월대보름에 찰밥·오곡밥·나물 등을 얹은 키를 소에게 내밀었을 때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라 점쳤다. 풍수지리에서 소가 편안하게 누운 모양의 땅은 복을 주는 명당으로 여겨졌다.

소는 살아서 온갖 힘든 일을 견디고 죽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줬다. 고기는 음식 재료로, 뿔과 가죽은 공예품과 일상용품의 재료로 아낌없이 내준다. 오죽하면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고 했을까. 강한 힘과 벽사(辟邪)의 상징이기도 했다. 개업이나 이사를 했을 때 문 위에 코뚜레를 거는 풍습은 재물을 코뚜레처럼 꽉 잡아줘 가계가 번창하길 기원한 것이다.

도움말=국립민속박물관 정연학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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