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붕어빵

정상혁 기자 2021. 1.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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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 앞 붕어빵 7개 1000원.. 요즘 물가가 아니었다
낱개로 살 수 없는 이 빵은 나눠 먹기 위해 태어난 것

청량리역 3번 출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잠시 시력을 의심했다. 원조 붕어빵, 7개 1000원. 요즘 물가가 아니었다. 지폐 한 장을 플라스틱 통에 넣자 주인장이 붕어빵을 담아 건넸다. “남는 게 있습니까?” “남으니 팔죠.” 맛을 위해 그는 업체에서 공급해주는 반죽에 우유를 추가로 붓고, 싼값을 만회하려 더 많이 굽는다. 하루 2000개 남짓 찍어낸다고 했다. 옷깃을 여미며 세밑의 인파가 종종걸음으로 노점을 찾았다. 한파가 본격적으로 닥친 며칠 전이었다.

일군의 식객은 한결같이 붕어빵이 든 종이봉투를 가슴에 품은 채 자리를 떴다. 품는다는 것, 이 행위야말로 붕어빵을 겨울의 오랜 추억으로 존재하게 하는 이유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훈김을 흘리며 붕어빵이 얇은 봉투 안으로 몸을 뉘일 때, 그 작은 덩어리는 체온처럼 느껴지곤 한다. 조금 걷다 보면 붕어빵이 땀을 내며 식어 조금 눅눅해지는데, 뭉근한 살덩이가 살갗에 닿아 생물의 촉감을 일으킨다. 같은 길거리의 음식이어도 군밤이나 호떡과는 정서가 다르다. 노점 앞 어느 남자의 뒷모습에서 문득 붕어빵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家長)을 떠올렸다. 품에서 꺼낸 그것을 서로 닮은 식구들이 나눠 먹을 것이다.

붕어빵 파는 곳이 부쩍 줄었다. 오죽하면 주변 붕어빵 가게를 찾아주는 검색 어플까지 나왔다. 팥 가격이 뛰었고 감염병 여파도 컸을 것이다. 학철부어(涸轍鮒魚)라는 고사성어를 최근 알게 됐다. 수레바퀴 자국의 괸 물에 놓인 붕어 이야기, 매우 곤궁한 처지를 일컫는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옛말이 이 시대의 상황을 가장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어느 유명 유튜버가 “코로나로 아빠 일이 끊겨 붕어빵 장사를 하게 됐다”는 사연을 제보받고 해당 가족을 도와 붕어빵 파는 영상을 찍었다. 그러나 누군가 구청에 무허가 노점 단속 민원을 넣어 이들은 아예 장사를 접게 됐다. 붕어빵을 반으로 쪼갤 때 허공으로 휘발되는 열(熱)처럼, 겨울의 풍속은 겨울보다 서늘한 추위 앞에서 얼어붙고 있다.

붕어빵은 원래 도미빵(鯛焼)이었다. 1930년대 일본서 건너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종(種)이 변화했다. 일본 사람은 평소 먹기 어려운 생선의 왕, 우리는 서민에게 친숙한 가장 일반의 물고기를 빵의 형상으로 삼았다. 바삭거리는 붕어빵 겉면이 내게는 붕어들이 간혹 지나치곤 했을 한강변의 모래톱처럼 보인다. 소박한 미감 탓에 붕어는 가재·개구리와 묶여 서민의 표상으로 인용되곤 한다. 모두가 개천의 용이 될 수는 없으니 붕어로 만족하며 살 수 있도록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는 어느 교수의 얼빠진 제안도 있었다. 붕어에게 온천(溫泉)은 지옥이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를 하구(河口)로 끌어내리는 감성의 언어가 아니라, 진짜 온기다.

익산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김남수(65)씨는 붕어빵을 팔아 하루 1만원씩 모은 돈 366만원을 지난달 시(市)에 기부했다. 올해로 9년째다. 외환위기 때 사업이 주저앉아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그는 “올해 많은 사람이 돈을 못 벌었다. 어려울 때 돕고 싶다”고 담백하게 말했다. 366만원이라는 액수에서, 365일의 품삯 위에 덤으로 붕어빵 하나를 얹어주는 사람의 손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위로의 모습일 것이다. 빵 좋아하기로 유명해 관련 책까지 쓴 소설가 백수린에게 붕어빵은 “낱개로는 구할 수 없는 빵”이다. 그것은 나눠 먹기 위해 탄생한 것처럼 보인다. 붕어빵은 언제나 동절기를 견뎌내려는 자세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새해의 첫날은 여전히 겨울이나, 다음 계절의 온기가 하루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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