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망 하루 1000명… ‘방역 우등생’ 독일의 추락

파리/손진석 특파원 2021. 1. 1.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초기엔 병상 확보 등 앞서며 선방
2차확산때 ‘부분 봉쇄’로 피해키워, 지난달 64만명 확진… 프랑스 2배
9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하원 연설에서 방역 수칙을 지켜달라며 호소하고 있다./유튜브

2020년 내내 유럽의 모범 방역국으로 꼽힌 독일에서 연말을 맞아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가을 유럽의 2차 확산기에 이웃 나라들보다 방역 수위를 느슨하게 적용했다가 허를 찔렸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30일(현지 시각) 독일의 질병관리청 격인 로베르트코흐연구소는 하루 사이 전국에서 집계된 코로나 사망자가 1129명이라고 밝혔다. 코로나 발병 이후 독일에서 하루 사망자가 1000명을 넘은 건 처음이다. 11월까지만 해도 독일에서 하루 사망자가 500명을 넘어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날 프랑스의 사망자는 303명으로 독일의 4분의 1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다.

독일은 줄곧 프랑스보다 방역 성과가 우수했지만 최근 처지가 정반대로 뒤집혔다.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30일까지 12월 한 달간 독일의 코로나 확진자는 64만1229명으로, 프랑스(37만8010명)의 1.7배에 달했다. 같은 기간 사망자로 보더라도 1만6310명이 목숨을 잃은 독일이 1만1341명이 숨진 프랑스보다 5000명 가까이 인명 피해가 컸다.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독일은 더 이상 방역 롤모델이 아니다”라고 했다.

독일 코로나 하루 사망자 추이

독일은 지난봄 1차 확산기부터 가을까지는 월등한 의료 시스템 덕분에 피해가 적었다. 건실한 정부 재정을 바탕으로 인공호흡기를 프랑스보다 5배 이상 구비해 놓고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병상이 독일은 8개로 프랑스(6개), 이탈리아(3.2개), 영국(2.5개)을 압도했다.

그러나 지난가을 2차 확산기 때 방역 수위를 느슨하게 유지했다가 역습을 당하고 있다. 프랑스는 10월 말부터 한 달가량 2차 이동 금지령을 내려 국민의 발을 묶었고, 영국도 11월 내내 대부분 지역에서 전면 봉쇄령을 내려 대응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독일은 식당·술집의 영업을 중단하는 수준의 부분 봉쇄령으로만 버텼고, 이에 따른 후폭풍으로 12월 들어 피해가 급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사 출신인 독일 녹색당 의원 자노슈 다멘은 도이체벨레 인터뷰에서 “독일이 봄에는 ‘방역 챔피언'이었지만 여름 이후에는 겨울에 대한 대비가 엉성했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뒤늦게 12월 16일부터 수퍼마켓·약국·은행 등 필수 업종만 빼고 모두 영업을 중단시키며 전면 봉쇄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는 말이 나왔다. 전염병 학자인 마이크 틸데슬리 영국 워릭대 교수는 CNBC 인터뷰에서 “독일이 먼저 방역에 성공한 것이 최근 피해가 커진 이유”라고 했다. 자만에 빠져 방심했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코로나 사라졌으면 - 지난 30일(현지 시각) 인도의 보팔 지방에서 네 여성이 2021년 새해를 축하하는 의미로 숫자 모형과 주사기로 ‘2021’을 만들어 치켜들고 있다. 숫자 ‘1’을 주사기로 표현한 것은 코로나 퇴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EPA 연합뉴스

독일이 전국 단위의 방역 조치를 취하는 의사 결정을 내릴 때 구조적으로 느리다는 점도 부각되고 있다. 독일은 보건 정책을 전통적으로 16주(州)가 자체적으로 집행한다. 그래서 지역별로 방역 수위가 제각각이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빠른 대응을 하기 어렵다. 30일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은 1월 10일까지인 전면 봉쇄령을 연장할지에 대해 “1월 5일에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16개 주총리가 협의해야 결정된다”고 했다.

여름 이후 극우파를 중심으로 방역 조치를 거부하는 시위가 유럽에서 가장 거칠게 벌어졌다는 점도 방역에 악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16주 가운데 최근 일주일 사이 가장 바이러스가 많이 퍼진 곳은 옛 동독 지역인 작센주다. 10만명당 신규 확진자가 전국 평균의 2.9배인 405명에 달한다. 이곳은 극우 정당 지지율이 높고 방역에 따르지 않는 주민들이 많은 지역이다.

독일 정부는 백신 이외의 다른 대책이 없다고 판단하고 접종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27일부터 사흘간 화이자 백신 접종자는 독일이 4만1962명으로 프랑스(119명)보다 훨씬 많다. 슈판 보건부 장관은 30일 유럽의약품청(EMA)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사용 승인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영국이 긴급 사용 승인을 했다. EMA는 임상 자료가 미비하다며 이 백신에 대한 승인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