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가 닥치면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거대한 악이 모두 드러난다"

조정진 2021. 1.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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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 '우한일기-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의 기록' 마침내 번역 출판
코로나19로 우한이 봉쇄되자 도시의 참상과 중국 정부의 진실 은폐 및 왜곡, 관리들의 안일한 대응과 시민들의 절규를 낱낱이 기록해 자신의 SNS에 올린 작가 팡팡. 그는 “상식이 부족하고 객관성과 정확성이 결여된 사회는 말로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심지어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고 일갈하며 “코로나19 비극은 인재(人災)”라고 단정했다.
세계가 코로나19로 멈춰 있다. 인류는 이전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의 비극이 처음 터져 나온 곳, 그리하여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들은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아갈 이 바이러스를 ‘차이나 바이러스’ 혹은 ‘우한폐렴’이라 지칭하며 거리를 두었던 곳, 중국 우한(武漢)에서 일어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돌연한 창궐과 일파만파의 확산, 은폐와 침묵, 고위직들의 안이한 대응과 평범한 사람들의 절규를 목격하고, 그 실상을 낱낱이 기록한 중국 작가 팡팡(方方)의 ‘우한일기-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의 기록’(조유리 옮김, 문학동네)이 한국어로 번역돼 출간되었다.

책의 첫 문장은 “바이러스는 인류 공동의 적이다”로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팡팡은 이렇게 덧붙인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적은 우리 안에 있다. 적은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우리들 역시 스스로의 적 혹은 공범자이다. 사람들은 지금에서야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매일 말로만 ‘대단하다, 우리나라’라고 떠들어대 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매일 정치공론만 일삼고 실질적인 업무는 하지 않는 간부들은 조금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입만 살아 있는 노동자’라 부른다), 나아가 상식이 부족하고 객관성과 정확성이 결여된 사회는 말로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심지어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을 말이다. 심각하고 무거운 교훈이다. 우리는 사스 사태가 터진 2003년을 지나왔지만, 금세 그 일을 잊어버렸다. 이제 2020년의 일까지 더해졌으니, 우리가 더 이상 잊어버릴 수 있을까? 고난은 언제나 우리 뒤에 있다. 우리가 경계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시 쫓아와 우리를 고통스럽게 잠에서 깨울 것이다.”

땅바닥에 쓰러진 문학의 얼굴 세워줬다

팡팡의 ‘우한일기(武漢日記)’에 대해 극찬한 이가 있다. “팡팡의 일기는 코로나19의 가장 자세한 문학적 기록이 될 것이고, 이번 역병 재난에 대한 기억의 화석이 될 것이다. 우리는 땅바닥에 쓰러진 작가와 문학의 얼굴을 다시 일으켜 세워준 팡팡에게 감사해야 한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중국의 문호 옌롄커(閻連科)가 ‘우한일기’로 우한의 체험을 글로 고발한 동료 작가 팡팡한테 보내는 찬사이다. 한국의 작가 김훈도 보탰다.

“‘우한일기’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의 은폐와 침묵을 고통스럽게 추적하고 있다. 중국 최고의 호흡기 질병 권위자 중난산(鐘南山)과 우한시 중신병원의 의사 리원량(李文亮), 그리고 동료 의사들의 경고와 호소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사람끼리는 전염되지 않는다’며 현실을 은폐했고, ‘괴담’을 유포한 의사 8명을 처벌했다. 언론은 연일 태평세월의 뉴스를 전했고, 코로나19는 팽창했다. 정부는 바이러스를 통제하지 않고, 감염병이 돌고 있다는 ‘말’을 통제했다. 이 코로나19의 지옥은 ‘거짓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팡팡은 결론지었다. 정치권력은 원하지 않는 사실을 믿지 않고, 원하는 환영(幻影)을 믿는다. 그래서 고해의 파도는 더 높아진다. 희망은 선한 다수의 마음과 행동 속에 있었다. 봉쇄된 대도시에서 시민들은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진실을 요구했다.”
중국 작가 팡팡의 ‘우한일기-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의 기록’ 표지.
팡팡, 신사실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팡팡은 1955년 중국 난징에서 태어나 코로나19 최초 발생지인 우한에서 성장했다. 공장하역부로 짐수레를 끌며 생계를 잇던 중 아버지가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자, 우한대학교에 들어가 중국문학을 전공하고 작가가 된다. 도시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중국 ‘신사실주의 대표작가’로 평가받는다. 2010년 중국 최고 권위의 루쉰문학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1950년의 토지개혁을 다룬 소설 ‘연매(軟埋)’로 루야오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곧장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2020년 1월 25일, 우한에 거주하고 있던 팡팡은 도시가 봉쇄된 지 사흘째부터 인구 1000만의 대도시가 하루아침에 멈춰버린 우한의 참상과 생존기를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 써나가기 시작한다. 중국 네티즌들은 ‘살아 있는 중국의 양심’ ‘우울한 중국의 산소호흡기’라며 극찬했다. 중국공산당 검열로 팡팡의 웨이보가 차단되고 글이 계속 삭제 당하자, 중국 네티즌들은 팡팡의 일기를 댓글로 각자 이어서 올리는 댓글 릴레이를 펼치기도 했다. 결국 팡팡의 일기는 SNS를 넘어 해외 언론에 소개됐고 날로 유명해졌다.

이후 ‘우한일기’에 지지 의사를 밝힌 학자들이 정부 당국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팡팡도 고발당했다. 그러나 팡팡은 중국 내부에서의 탄압과 비판에 맞서 “비상사태가 닥치면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거대한 선과 악이 모두 드러난다”며 “작가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느낀 것을 진실하게 쓸 뿐이지 쇼를 하지 않는다”라고 일갈했다. ‘우한일기’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독일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체코 프랑스 러시아 일본 베트남 등 세계 15개국에 판권이 팔렸으나, 중국에서는 끝내 출판되지 못했다. ‘우한일기’로 코로나19의 참상과 성찰을 전 세계에 증언한 팡팡은 우리나라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함께 2020년 BBC 선정 올해의 여성 100인으로 선정되었다.

마스크 빨아 다리미질 해서 재사용

‘우한일기’에는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감염 위험에 노출되지만, 마스크 대란으로 새 마스크를 구입할 길이 없자 사용한 마스크를 빨아 다리미로 다려서 다시 쓰는 사람들이 있다. 몸에서 열이 나고 증상이 있지만, 안전하게 치료받을 병상은커녕 의사 얼굴조차 볼 수 없어 새벽 거리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고, 암 환자처럼 병원에 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데도 입원 후순위로 밀려난 사람들이 코로나 비극의 통계로도 잡히지 않은 채 쓰러져간다. 부모가 모두 확진자로 격리되자 집에 혼자 남은 뇌성마비 아이는 아사하고, 수백수천의 시신들이 온당한 장례 절차조차 없이 비닐에 싸인 채 포개어 쌓여 화물트럭에 실려 나가는 도시의 참상을 팡팡은 눈 돌리지 않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 코로나의 지옥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우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돕는다. 우한의 생존자들은 먹을 것을 이웃과 나누고, 최소 인원의 움직임으로 최대한 긴 기간 동안 버틸 수 있도록 생필품을 공동구매한다. 전염병이 번진 이 참혹한 도시에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독거노인의 끼니를 염려하며 간장 뚜껑과 꿀 뚜껑을 열어주러 조심조심 문을 두드리는 이웃들이 있다. 텅 빈 거리에서도 환경미화원들은 거리를 쓸고, 의사와 간호사, 경찰 들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우한이 붕괴되지 않도록 지탱한다.

무엇보다도 팡팡은 이 재난이 어디서, 왜 초래되었는지, 어떤 안일함과 무책임이 이런 엄청난 비극을 확산시켰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팡팡은 이 코로나 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호명하고, 봉쇄 기간 내내 소리 높여 그들이 책임지고 사죄하고 물러날 것을 촉구한다.

“재난 속의 세월은 고요하지 않다”

책으로 묶어져 나온 그의 일기장 한 토막을 소개한다. 재난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아련하고 아프다.

“우한은 현재 재난을 겪고 있다. 재난이란 무엇인가? 마스크를 쓰거나 며칠 동안 밖에 나가지 못하거나 단지에 들어갈 때 통행증이 필요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재난이란, 병원에서 예전에는 몇 개월에 한 권 쓰던 사망자 명부를 지금은 며칠에 한 권씩 쓰는 것이다. 재난이란, 예전에는 화장터에서 관에 담긴 한 구의 시신을 한 대의 운구차로 옮겼다면, 지금은 비닐로 싼 시체 몇 구를 포개어 쌓아서 화물트럭에 실어가는 것이다. 재난이란, 당신의 집에서 한 명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며칠 혹은 보름 안에 전부 사망하는 것이다. 재난이란, 당신이 아픈 몸을 끌고서 춥고 비가 내리는 날 사방을 뛰어다니며 자신을 받아줄 병상 하나를 찾아다녀도 끝내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재난이란, 새벽부터 병원에서 줄을 서고 번호표를 받아도 다음날 새벽에야 진료 순서가 되거나 혹은 순서가 여전히 오지 않아 길바닥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것이다. 재난이란, 당신이 집에서 병원의 입원 통지를 계속 기다리다가 통지가 왔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것이다. 재난이란, 병원으로 이송된 중증 환자가 사망하면 병원에 들어간 그 순간이 가족들과 작별한 순간이 되어 서로 영원히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재난 속의 세월은 고요하지 않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환자들의 죽음과 가슴을 도려내는 가족들의 아픔, 죽음을 향한 생존자들의 삶이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비극은 인재(人災)다”
우한시 중신병원의 의사 리원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렸지만 중국 정부 당국으로부터 처벌 받은 후 진료 중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팡팡은 코로나19의 비극은 인재(人災)라고 외친다. 중국에서 중난산 원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한 의료진 사망과 사람 간 전염을 인정한 것은 2020년 1월 20일의 일이었다. 그러나 2019년 12월 말부터 우한의 화난수산시장에서는 ‘사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의문의 폐렴 환자들이 대거 발생하고 있었다. 리원량 같은 의사들이 심상치 않은 전염병의 기미를 감지하고 세상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으나, 저지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했다. 이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 당국의 공식 입장은 이러했다.

“人不傳人 可控可防(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촉발되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지 20여 일, 의사 리원량이 ‘괴담 유포’ 혐의로 당국에 끌려가 반성문을 써야 했던 그 돌이킬 수 없는 시간, 팡팡은 이 악성 바이러스를 얕보고 알량하게도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은폐한 이들을 향해 매섭게 외친다. 人不傳人 可控可防, “이 여덟 글자가 도시를 피와 눈물로 적셨다”고.

팡팡은 직급과 위치를 막론하고 이 코로나 사태에 책임이 있지만 고개 돌렸던 자들을 향해 끝까지 책임을 추궁한다. 그들이 ‘어쩔 수 없다’는 변명과 핑계를 남발하며, 목숨을 잃은 수천 명의 우한 시민들에 대한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이 자리를 보전하고 있으면 또다른 재난이 도래했을 때, 우한은 똑같이 무사안일한 대처로 더 큰 재난에 맞닥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한 봉쇄 43일 차,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예방활동에 성과를 낸 단체와 개인을 표창하는데, 바로 거기엔 신종 바이러스가 충분히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는 말을 남긴 베이징의 의사 왕광파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늙었지만 비판 능력은 나이 들지 않았다”

우한의 바이러스 기세가 서서히 꺾여갈 무렵, 돌연 팡팡은 중국의 밝고 긍정적인 면을 세계에 내보이지 않고, 부끄럽고 왜곡된 면을 까발리는 매국노 작가라며, 일부 네티즌들과 극단적인 지식인들의 맹공격을 받는다. 그럼에도 팡팡은 결코 봉쇄일기를 멈추지 않는다. 쓰레기차에 식재료를 실어다주는 공무원들의 무신경과 몰상식에 분노하고,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완승했다’며 억울한 망자들의 혼이 아직 이승을 채 떠나지도 못했을 우한에서 승전보를 울리는 일부 작가들을 맹렬하게 비난한다.

“나는 후베이성의 동료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앞으로 여러분들 중 대부분이 정부를 칭송하는 글과 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제발 글을 쓸 때는 몇 초만이라도 생각해보라. 당신들이 마땅히 찬양해야 할 대상이 과연 누구인지 말이다. 아첨을 하더라도 제발 정도는 지켜달라. 나는 늙었지만 내 비판 능력은 결코 나이 들지 않았다.”

이처럼 우한의 봉쇄기간 내내 그는 권력자들과 이 코로나 사태를 통해 돈과 기회를 노리는 뻔뻔한 자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런 협잡꾼들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을 제치고 가장 크고 아름다운 줄기를 이루는 것은 단단한 생활력과 연대로 어려운 시절을 버텨나가고, 서로를 돌보는 우한의 평범한 노동자와 생존자들이다.

고립된 주민들끼리 생필품 나눠 쓰기 ‘눈물’

팡팡의 일기에는 인구 천만의 도시가 갑자기 봉쇄되었을 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하는지, 또 어려움을 돌파하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우한에서도 코로나 발생 초창기에는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개인이 마트에 나가는 정도는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내 허가받지 않은 개인은 아예 거리로 나서지 못하게 되고, 아파트 단지나 마을 입구에서 공동구매 대표자가 사온 생필품을 분배받게 된다. 그러나 이내 집 문 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서면 안 되는 혹독한 제재가 뒤따른다. 이때 우한 사람들은 밧줄에 서로 필요한 물건을 매어서 창문으로 넘겨주고 넘겨받는다. 어쩌다 당장 필요한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식료품을 구하면 조용히 이웃의 문 앞에 두고 가기도 하고, 자원봉사자들은 ‘사랑의 채소’를 만들어 우한 인민들에게 나누어준다.”

외국에도 많이 알려진 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렸지만 정부 당국으로부터 처벌만 받은 리원량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하자 우한에는 애끓는 애도의 물결이 흐른다.

“오후에는 어떤 우한 사람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리원량의 가족과 아이를 우리 우한 사람들이 부양합시다!’ 호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은 어제 리원량 선생이 사망한 시간에 불을 끄고, 손전등이나 휴대폰을 이용해 하늘에 빛을 쏘며 휘파람을 불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어두운 밤하늘에 리원량은 바로 이런 한줄기 빛이었다.”

“아, 우한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 마음속의 상처를 이해할 수 없다. 이건 단지집안에 갇혀서 밖에 못 나가는 문제가 아니다. 우한 사람들은 위로받고 마음을 풀어놓을 곳이 필요하다. 왜 모든 우한 사람들이 리원량의 죽음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 슬퍼했겠는가? 왜 소리지르며 오열했겠는가? 우한 사람들에게 리원량은 자신과 같다. 우리들 중 한 사람이고, 집안에 갇혀 있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리원량과 팡팡은 봉쇄 속 도시의 산소호흡기-호루라기“

리원량이 그러했듯, 팡팡의 일기도 우한 사람들에게는 봉쇄된 도시의 산소호흡기였고, 희망과 연대를 독려하는 호루라기였다.

“코로나19가 얼마나 위험한지, 전문가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비록 상황이 호전되고 있지만, 조금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도시가 봉쇄된 지 한 달이 되어가면서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사람들도 있다. 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만 조심하면 감염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감염된다 해도 스스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가 가족에게 전파하고 난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너도나도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면 거리는 다시 사람으로 북적이게 될 텐데, 그러면 우리의 노력과 수고도 전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코로나19의 가장 무서운 점은 순식간에 전염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미 스러져가는 단계에 접어든 바이러스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은 바이러스를 도와줄 생각인가? 우리는 이미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목숨 건 사람들의 노력을 절대 헛되이 할 수 없고, 또 이렇게 버틴 스스로의 노력도 허투루 만들 수 없다.”

코로나19로 봉쇄된 우한은 슬픔과 우울을 넘어 참혹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인류는 코로나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어떻게 배울 것인가. 그러나 여전히 코로나19는 세계 여기저기서 정쟁과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고, 코로나19를 둘러싼 ‘남 탓하기 게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팡팡은 선동가도, 반체제 인사도 아니다. 그러나 이 작가는 단호하게 말한다. 코로나19 창궐 초기 중국 정부의 안이한 대응, 그리고 신종 바이러스와 싸우는 중국의 경험에 대해 불신하고 경멸한 서구권 국가의 오만함으로 인해 인류 전체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이다. 베이징의 중난하이 지도부의 안뜰에서도, 백악관 복도에서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시대의 메시지이다.

조정진 선임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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