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러지지마라, 아흔 넘은 내도 살아남았다 아이가”

청도/김성모 기자 2021. 1.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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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신년특집 - 코로나 1년, 우린 더 강해진다]
96세 코로나 완치자, 황영주 할머니의 새해 소망
지난 30일 오후 경북 청도군 자택에서 만난 황영주 할머니는 ‘학교’(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차려줬다는 생일 잔치 사진을 들고 나와 자랑했다. 황 할머니는 “다들 이리(이렇게) 잘해준다.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김동환 기자

“내가 코로나 이겼다꼬, 이래이래(이렇게) 다들 (날) 위해주니, 기분이 좋아가 세끼 소화 안 되고 우짜고 그런 거 없어요. 오늘도 자~알 먹고 잘 놀다 왔지요.”

지난 30일 오후 5시쯤 경북 청도군 한 농가. 밍크 코트 빼입은 ‘멋쟁이 할머니’ 목소리가 또랑또랑했다. 매일 다니는 ‘학교'(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와 “손님 왔다”는 아들(73) 말에 두 손 앞으로 쭉 내밀어 짝짝짝 박수까지 쳤다. 100세를 바라보는 황영주(96) 할머니는 작년 3월 코로나와 싸워 이겼다. 그 후 9개월을 건강하게 지내다 이날 개선장군처럼 기자를 맞았다.

코로나 사태로 2020년 한 해 6만명 넘는 확진자가 쏟아지고 900명 넘은 목숨이 스러졌다. 고통스러운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는 증언한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고. 그 맨 앞자리에 100세 인생을 앞둔 황 할머니가 있다. “내 같은 사람도 이래(이렇게) 건강해졌다. 아픈 사람들 자꾸 시러지지(쓰러지지) 말고, 용기들 내라”고 했다.

◇“다들 보고 싶어 일어났지”

작년 3월 13일 악몽이 시작됐다. 황 할머니와 가까이 지내던 분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이 왔다. 검사를 받아보니 할머니도 양성 판정이 나왔다. 아들 홍효원(73)씨는 “구급차가 어머니를 싣고 병원에 가는데 나중에 유골 받는 거 아닌가 싶어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고 했다. 70대 노인이라도 아들은 어쩔 수 없는 아들이다. 할머니는 “내 감기다, 감기”라고 아들을 다독였다.

당시 미열 증세만 있었지만 할머니는 경북도립 포항의료원으로 이송됐다. 워낙 고령이라 고위험군 치료가 가능한 큰 병원이 필요했다. 할머니는 낯선 환경에 통 적응하지 못했다. 식사도 못 하고, 우울증 증세까지 겹치며 쇠약해졌다. 그런 할머니를 일으킨 건 매일 다니던 노인보호센터의 응원이었다. “많이 드시고, 건강 되찾으시라고 학교에서 연락 왔다”는 병원 간호사 말에 그날부터 힘이 솟아났다고 한다. “(병원에 격리돼 있으니) 아들도 보고 싶고 며느리도 손자도 다 보고 싶었지요. 내가 얼른 먹고 기운을 찾아가지고, 건강을 얻어서 빨리 퇴원을 해가(해서), 가족도 보고 동료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요.”

입원 2주쯤 지나 거뜬히 완쾌했다. ‘이제 퇴원하셔도 된다’는 병원 연락에 아들 홍씨가 한달음에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당시 국내 코로나 환자 가운데 최고령 완치자였다. 할머니는 언제 아팠냐는 듯 학교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이날도 학교 다녀왔다는 할머니는 “그게 송대관이 노랜가? ‘유행가’ 노래도 한 곡조 뽑고 춤도 추고 체조도 했지. 지리(지루)하게 그렇지가 않아요. 재미가 나요”라고 했다. 의료진 노고도 잊지 않았다. “간호사가 내한테 너무 잘해줘, 안 잊어버린다.”(황 할머니) “땀 젖은 방호복 입고 주야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어머니를 돌봤겠지요. 어머니를 살린 진짜 ‘영웅’은 의료진입니다.”(홍씨)

◇“모든 게 감사” “우얬든 건강합시다”

1924년 12월생. 까마득히 먼 시절에서 온 분이 나 보란 듯 코로나와 싸워 기어코 이겨냈다. 지난주 노인보호센터가 차린 생일상에서 고깔모자 쓰고 찍은 사진을 꺼내 들더니 “학교에서 생일 잔치 한기라. 떡도 먹고, 과일도 먹고 했지요”라고 자랑했다. “내가 학교에서 나이로 1등”이라는 할머니는 “학교에서 앞치마 입은 선생님(복지사)들이 코로나 이기 냈다꼬, 경사라해주는데, 또 기분이 그리 좋더라”고 했다.

코로나 극복은 모두의 소망이다. 황 할머니와 아들 홍씨의 새해 바람도 다르지 않다. “우리 어머니도 코로나를 이겨냈잖아요. 코로나 환자와 가족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홍씨) “내가 코로나에서 되살아 났어요. 우얬든(어쨌든) 건강하니 그리 좋아요. 모든 게 감사합니다. 다들 건강하세요.”(황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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