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첫눈 내린 날

김지연 사진가 2021. 1.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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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토요일에도 근무하던 시절에 어른들은 토요일을 반공일이라고 했다. 오전에만 일을 했으니 반나절 쉰다는 뜻이다. 지난해 달력을 뒤로 넘겨보니 공일도 아니고 반공일도 아닌, 재택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 같다. 작년 초부터 시작한 코로나19 사태는 찬바람과 함께 다시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남쪽 지방은 어젯밤에 첫눈이 내렸다. 평년보다 늦게 찾아온 손님이라 반갑다. 눈이 녹기 전에 근처 야산에 올랐다. 언덕에 올라서니 복숭아나무에도 눈이 쌓였다. 그사이로 복숭아를 감싸던 노란 봉지가 초롱불처럼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지난해 오십일이 넘은 긴 장마는 복숭아 과수원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마침 복숭아가 익어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다. 복숭아는 보관이 어려운 과일이라 때를 맞춰서 따야 한다. 그런데 비 때문에 미처 따지 못하고 그 굵고 탐스러운 과일이 바닥으로 툭 툭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남의 복숭아 떨어지는 소리에 왜 내 가슴이 쿵쿵 내려앉는지. 그렇게 많은 복숭아가 땅에서 썩어가는 것을 처음 보았다. 물론 이보다 더한 일도 겪는 세상인지라 어지간한 소리에는 꿈쩍도 않는다.

과수원일은 겨울에 밑거름을 주고 가지치기하고, 봄이 되면 꽃순을 솎아주고, 봉지를 씌우고 그러다보면 익는다. 수확이 끝나면 빈 가지를 쉬게 한다.

바닥엔 비료 자루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빈 가지들은 찬바람 속에서 지난해 아픔을 떨쳐내고 새 결실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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