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재활용이 답일까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2021. 1.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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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부쩍 재활용 이슈가 시골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의 서정적 풍경을 앞에 두고 개울가 다리 밑에서 개를 때려잡는 두 얼굴이 엉켜 있는 곳. 시골에는 낭만적이고도 잔인한 두 면모가 공존한다. 재활용 실천도 마찬가지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쓰레기 없이 알맹이만 파는 ‘알맹상점’에서는 커피 가루, 실리콘 등 버려지는 물건을 모아 재활용한다. 광주광역시 시민들은 카페의 우유팩을 수거해 화장지로 만드는 ‘카페라떼 클럽’을 운영한다. ‘오늘의 분리수거’ 앱은 분리배출 기계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포인트를 지급한다. 서울환경연합은 ‘플라스틱 방앗간’에서 작은 플라스틱을 빻아 생활용품을 만든다.

기업에서도 재활용 수거에 나선다. 음료에 부착된 빨대를 모으고, 다 쓴 칫솔을 모아 의자로 재활용하고, 헹궈서 버리라며 재활용 세척소를 운영한다. 한 홈쇼핑 회사의 아이스팩 수거 캠페인은 매번 조기 마감이라 ‘광클릭’ 속도로 신청해야 참여할 수 있다. 이 추세면 플라스틱 문제에도 광명이 스며들 것 같다.

며칠 전 아이스팩을 수거하는 한 생활협동조합 물류센터에 쌓여있는 거대한 아이스팩들의 사진을 보고 말았다. 수거된 아이스팩은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쓸모가 없었다. 웬만한 업체는 ‘쿠팡’ ‘마켓컬리’가 새겨진 아이스팩 사용을 꺼린다. 수거하는 쪽은 공간, 인력, 관리를 떠맡고도 재사용할 곳을 찾지 못해 결국 수거를 중단하기로 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나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없이는 지속적 운영이 불가능하다.

현재 재활용산업은 저유가에 울고 코로나19에 울고 이중고에 직면했다. 코로나 사태로 유럽에서는 재활용 플라스틱의 수요가 전년도 같은 분기 대비 약 20~30%, 동남아와 남아시아에서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인도와 필리핀에서는 재활용공장 중 80%가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집에 오래 머물수록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데 재활용률은 떨어진다. 그뿐이랴. 코로나로 경제성장이 멈추자 원유값이 하락하고 원유에서 뽑은 새 플라스틱 가격도 떨어졌다. 전 세계 재활용 음료병은 새 음료병에 비해 83~93%나 비싸다.

자원순환 사회를 연구하는 앨런맥아더재단에 따르면 화학적 재활용 등 신기술을 모두 동원해도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54%만 재활용이 가능하다. 재활용에 앞서 일회용품을 거절하고 줄이고 재사용하는 인프라를 갖춰야 하는 이유다. 재활용품 수거 붐은 일말의 위로를 선사하지만 이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올해부터 실제 재활용 여부를 표시하도록 한 재활용 등급제에서 화장품 용기의 90%가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았다. 화장품 업계는 돌연 환경부와 협약을 맺어 다 쓴 용기 10%를 수거하고 재생원료를 사용한다며 ‘재활용 어려움’을 표시하지 않기로 했다. 제발 수거 안 해도 되니까 애초에 재활용되게 만들거나 법에 따라 ‘재활용 어려움’을 표시해달라. 1월5일까지 온라인 ‘국민생각함’에서 ‘포장재’를 검색해 이에 대한 의견을 남길 수 있다. 아이스팩과 빨대를 수거하는 것보다 재활용되지 않는 포장재를 몰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활용은 쓰레기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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