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희망 에세이] 난 그래도 낙관한다, 눈에도 바람에도 지지않기를

소설가 김연수 2021. 1. 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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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추자중학교의 전교생은 스물두 명에 불과하다. 그 학생들에게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건 지난가을의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들려줄 지혜가 내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래서 거절하려는데, 중학교 시절의 일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가 생각났다. 그 소설의 제목은 일본 시인 미야자와 겐지의 시구에서 빌려왔다. 중학생 시절, 내가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한 친구에게 뒤늦게 전하고픈 말이었다. 그 말을 이제라도 중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강연하던 날, 첫눈이 내렸다. 추자도에는 눈이 귀하단다. 아이들은 강아지처럼 좋아라며 뛰어다녔다. 그런 아이들을 도서실에 모아놓고 강연을 하려니 잘 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이들은 하품을 하기도 하고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운동장에는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낭송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 첫눈이 내렸잖아요. 지금까지 내가 한 얘기들은 다 잊더라도 이 시를 읽은 일만은 잊지 말았으면 해요. 여러분도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될 겁니다. 그러다가 죽을 만큼 힘든 일도 생길 거예요. 바로 그런 순간에, 2020년 첫눈이 내리던 날, 소설가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마스크를 쓴 채로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라는 시를 읽어준 일이 있었다는 걸 떠올린다면, 그것만으로 저는 기쁠 겁니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시절, 고아로 태어난 운명 때문에 결국 자퇴할 수밖에 없었던 한 친구에게 뒤늦게 전하고픈 그 말을 추자중 학생들에게 들려줬다.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될,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몇십 년이 흐른 뒤, 2020년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까? 2020년의 우리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을까?

강연은 하루만 하면 됐는데, 추자도에 머문 기간은 닷새였다. 첫눈이 내린 날, 그 앞뒤로 뱃길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달리 할 일이 없었기에 올레 18-1코스를 걷기로 했다. 추자도는 섬이 두 개다. 처음에는 하추자에서 상추자를 향해 걸었다. 악천후로 관광객이 들어오지 않아 올레길을 걷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어두운 숲길을 걷다 보면 무덤이 나오곤 했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마스크를 벗고 걸어가니 살 것 같았다.

다음 날에는 하추자를 한 바퀴 돌았다. 세찬 바람이 지난 뒤의 하늘은 더없이 화창했다. 멀리 보길도를 바라보며 걷는데, 천주교 제주교구에서 설치한 ‘아기 황경한과 눈물의 십자가’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황경한은 황사영(1775~1801) 백서 사건의 당사자인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와 신앙의 증인 정난주 마리아의 아들이다. 남편이 순교한 후 두 살배기 아들 황경한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 가던 정난주는 배가 추자도를 지날 때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 것을 염려하여 경한을 섬 동쪽 갯바위에 내려놓고 떠났다.”

소설가 김연수

그걸 보고 나무 계단을 따라 바다 쪽으로 내려갔더니 갯바위에 설치된 십자가가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십자가 뒤의 바다가 마치 십자가로도 넘어가질 못할, 거대한 푸른 벽처럼 느껴졌다. 그런 벽을 마주하고서도 어린 아들을 낯선 섬에 내려놓는 엄마의 마음과, 또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하염없이 제주만 바라봤다던 아들의 마음을 나는 생각했다. 비관은 쉽다. 절망하는 것이야. 힘든 건 희망을 품는 일이다. 눈물뿐일지라도 그 희망을 놓지 않는 일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그렇게 힘든 길을 택한 이들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선물이다. 우리는 다음에 올 사람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줄 것인가.

내가 떠난 뒤, 추자도에도 확진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엊그제야 알게 됐다. 섬에서 만난 이들에게 안부를 전했더니 지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쏟아지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선생님이 함께 보낸 동영상을 보니 눈보라가 추자중학교 앞바다를 지워버리고 있었다. 나는 교실의 창으로 내다보이던 바다 풍경을 떠올렸다. 그런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그 아이들 앞에서 시를 읊던 일을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 덕분에 좋은 추억이 생긴 셈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2020년 첫눈 내리던 날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해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 질문에는 할 말이 많았다. 후회 많은 삶이기도 했고, 그럭저럭 운 좋은 삶이기도 했다. 인생의 행로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 중 누군가와는 오래 걷기도 했다. 물론 죽을 만큼 힘든 일도 있었다. 그럴 때 시 한 줄에 의지하기도 했고, 누군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아쥐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한 번 더 살고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도 찾아왔다.

그 누구의 인생인들 가볍다 말할 수 있으랴.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는 온전히 새로운 2021년 한 해가 펼쳐졌다. 2021년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한 해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로 기억되는 해가 되기를, 그러기 위해서 다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끝끝내 올 한 해를 살아내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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