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뮤지오

서울문화사 2021. 1.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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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살이 6년 차, 드디어 우리 집을 짓다! 서귀포에서 가장 못생긴 집을 완성하고 싶었다는 김지윤 씨네 이야기.


미국 모더니즘 건축가 리처드 노이트라의 캔틸레버 체어와 일명 클레오파트라 소파로 불리는 아티포트의 빈티지 소파로 연출한 거실.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편하고 좋았지만 구조적인 한계는 늘 아쉬운 점이었어요.
가구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외국 주택 사례들을 많이 접하게 됐는데
틀에 박힌 아파트 구조로는 도저히 구현할 없는 느낌들이 있더라고요.
주택을 짓는다면 주택만의 묘미가 있게 설계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빌라 뮤지오의 설계를 완성하는 데에 영감을 주었다는 1930년대 폴 헤닝센이 지은 ‘가장 못생긴 집’의 스케치를 걸어두었다.


거실 한편엔 김지윤 씨가 가장 아낀다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데스크와 체어 세트가 놓여 있다.


상부장을 없앤 대신 식료품들을 보관할 수 있는 매립형 벽 선반을 만들었다.


주방 하부장은 벨기에 키친 브랜드 CUBEX에서 영감을 받아 스틸 소재의 핸들을 벨기에에서 직접 공수했다. 커피를 담당하는 남편 공철병 씨와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로 빈티지 가구를 소개하는 아내 김지윤 씨.


주방에는 오렌지빛 루이스폴센의 조명을 달았다. 폴 헤닝센의 작품으로, 방화문과 비슷한 색으로 고른 것. 정면의 거울 장식은 프랑스의 디자이너 잉가 상페의 작품이다.

집을 지을 때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많은 돈을 들여 좋은 집을 짓는 것은 쉽지만,
적은 돈으로 멋진 결과를 내는 것이 진짜 실력이고 감각이라고.
그 말이 굉장한 위안이 됐어요. 모든 집이 크고 으리으리할 필요는 없잖아요.
작지만 감각적이고 우리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져가고 싶어요.

일명 ‘어린이 사무실’로 부르는 아이들 전용 공간. 추후 벽을 세워 남매 각자의 방으로 개조할 예정이다.


즐거운 남매의 일상에 함께하는 가구는 1970년대 아르텍에서 생산된 알바 알토 테이블 세트, 벽 선반은 언커먼하우스.


거실과 주방의 반대편, 건물의 가장 끝에 위치한 공간이 네 식구가 사용하는 침실이다.


아이들의 테이블 위치에서 바라본 모습. 비스듬하게 꺾인 복도를 지나 주방과 거실로 연결된다.


종종 테라스를 천문대 삼아 별을 관찰하는 가족의 망원경을 창가에 두었다.


빌라 뮤지오 2층에 위치한 세컨드 뮤지오와 프레임 커피의 공간.


스틸 파이프를 사용한 남성적인 디자인의 독일 가구와 디테일이 뛰어나며 위트 있는 디자인의 이탈리아 빈티지를 선호하는 부부의 취향이 느껴지는 컬렉션.


구찌니 머시룸 램프와 함께 버건디 컬러의 데스크, 체어로 연출한 세컨드 뮤지오의 한 코너.

제주도에서 브랜드를 꾸리고, 맘에 쏙 드는 집을 지어서 아이들을 키우고….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이런 삶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제주로 이주한 지는 만 5년이 되었네요. 둘째가 백일쯤 되었을 때 서귀포에서 한 달 살기를 경험했어요. 건설회사에 다니느라 야근, 회식에 시달리던 남편이 특히 고요한 이곳의 삶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서울로 복귀한 뒤 3개월 만에 남편이 다시 육아휴직을 내고 제주로 내려오면서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직장인 이후의 삶을 미리 준비해보자는 가벼운 생각이었지만 저희 부부 둘 다 사업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시장조사를 꽤 탄탄히 했죠. 당시 제주도에는 빈티지 가구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도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신선한 볼거리가 되지 않을까,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에 빈티지 가구를 다루는 ‘세컨드뮤지오’를 론칭했습니다. 빌라 뮤지오를 지으면서 1층을 저희 가족의 집으로, 2층을 사업장으로 쓰고 있어요. 저희 부부는 이곳에서 빈티지 가구를 소개하는 매장 겸 카페 세컨드뮤지오와 수입 식재료를 소개하는 프레이머즈를 운영합니다.

집을 짓기 전까지는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4년 정도 서귀포 시내의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돌이켜보니 이 기간이 주택살이를 위한 준비 기간이 되었네요. 집을 지어야겠다고 결정하고 나니 제주도에서는 집 짓기가 유독 어렵다는 말이 정말 많이 들려왔어요. 그래서 사업을 준비할 때처럼 시장조사를 또 열심히 했죠. 들어보니 시공사와의 문제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도 많았고, 바닷가에 지은 주택의 경우 습도 때문에 옷과 가구에 곰팡이가 스는 일도 흔하더라고요. 어느 정도 제주도의 삶에 경험치가 쌓이고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부지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Make your own house as second museo’라는 세컨드뮤지오의 슬로건에는
당신의 취향과 당신 자신이 집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제주로의 이주, 세컨드뮤지오의 시작이 그러했듯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한 삶에서부터 진짜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덴마크의 빈티지 아이템으로 꾸민 게스트 룸. 정면에 놓인 파란색 의자는 뵈르게 모겐센이 디자인했다.

언덕 위에 집이 살포시 앉은 느낌이에요. 바로 앞 학교의 운동장이 보이는 조용한 동네의 이 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애초 제주에 온 목적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중심의 삶이었던 만큼 학교와 병원 등의 편의시설이 가까운 서귀포 시내를 탐색하다가 지금의 자리를 발견했어요. 적당한 평수에 입지 조건도 괜찮았는데 문제는 경사가 심한 거예요. 고민이 많았던 때 우연히 1930년대 폴 헤닝센의 주택을 보게 됐는데, 이 땅만큼 심한 경사지를 살려서 저택을 지었더라고요. 실내에만 무려 계단이 37개나 있고, 구조도 특이하고 러프한 재료를 써서 당시 ‘가장 못생긴 집’으로 불렸다고 하던걸요. 그래! 우리도 서귀포에서 가장 못생긴 집을 짓자! 결정했습니다.

경사지를 활용하는 일이 관건이었겠네요. 설계나 건축 과정에서 특별히 원했던 사항이 있었나요?
경사진 땅 모양을 그대로 살리려고 하니 설계상 선택의 폭은 적었어요. 보통의 주택이 마당을 지나 건물이 등장하는 구조라면, 저희는 반대로 건물이 마당을 에워싼 구조예요. 도로와 접한 경사진 땅에 건물을 얹어 마당에서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했어요. 설계 과정에서도 의견을 많이 냈지만 특별히 요청했던 사항 중 하나는 각 층마다 동선을 분리해달라는 거였어요. 게스트 룸으로 쓰는 지층, 1층, 2층의 입구가 각각 따로 나 있어요. 게스트 룸은 나중에 에어비앤비로 운영할 계획이고, 2층 매장에는 손님들이 드나드는 만큼 서로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대비한 거예요. 내부 구조는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어요. 특히 아이들 공간의 경우 추후 방으로 구획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저희는 따로 건설회사를 끼지 않고 직영 공사를 했어요. 아침, 저녁으로 직접 나와 쉬지 않고 소통했습니다.

직영 공사라니. 셀프 인테리어보다 몇 배는 어려운 ‘셀프 집 짓기’가 되었겠네요.

각 공정마다 전문가들을 모으고, 직접 현장소장 역할도 해야 하고…. 집 짓기 공정을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누어서 업체 세 곳에 의뢰를 맡겼어요. 골조를 담당하는 업체에게 전기와 설비까지 해결하도록 하고, 창호를 시공하는 팀에서 단열 부분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식으로요. 서로 연결되는 공정을 묶어서 전문가에게 맡기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기도 쉽고, 현장을 통솔하기가 수월하답니다.

콘크리트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고 블랙과 레드 컬러 페인팅을 더해 합리적으로 꾸민 외관.

고대하던 주택살이를 해보니 어떤 점이 좋은가요?

아이들은 자전거와 보드를 타고, 너른 마당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어쩌다 코로나19 시대에 집을 지어 살게 되었는데, 주말에도 집에서 모든 게 해결이 된답니다. 넓은 마당이 놀이터가 되고, 작은 정원이 우리만의 텃밭과 공원이 되어주거든요. 마당 너머로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곤 해요. 남서향 집이라 오후 4시면 따스한 빛이 거실과 주방으로 깊게 들어와요. 그때 맞은편 학교에서 종소리가 들리면 학창 시절로 추억 여행을 하는 것 같아요.

많은 가구를 접하고, 떠나보내는 일을 하시죠? 가장 아끼는 가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지금 가장 아끼는 가구는 좋아하는 디자이너인 마르셀 브로이어의 데스크와 체어 세트예요. 특히 토넷 체어는 저와 같은 연도에 태어나 함께 나이 들어가는 ‘반려 가구’라 그 의미가 깊답니다. 가구를 다루지만 소장을 하는 데 욕심을 두진 않아요. 제 역할은 내 것으로 모으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를 찾아내고 흘러가게 하는 데 있으니까요. 저희 집 안에는 가족의 추억이 있는 가구를 남기려 해요.

기획 : 김의미 기자  |   사진 :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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