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린 "가야금 통해 한국을 알았고, 인생 희로애락을 배웠죠"

문주영 기자 2020. 12. 3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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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린 배재대 교수의 30여년 가야금 사랑..3월 음반 발매 앞둬

[경향신문]

조세린 배재대 교수는 음반 작업과 관련해 “가야금 연주자로서 한 단계 도약하려면 넘어야 할 작업”이라며 “기본에 충실한 가야금 산조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쉘리 라이트번

30여년간 가야금의 매력에 빠져 음반 발매까지 앞둔 미국인 교수가 있다. 조세린 배재대 교양학부 교수(50·본명 조셀린 클라크 Jocelyn Clark)는 외국인 최초로 오는 3월 발매를 목표로 가야금 산조 음반을 준비 중이다. 지난 12월29일 전화통화에서 그는 능숙한 한국어로 “음반을 내기로 마음먹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며 “음반을 통해 기본에 충실한 전통 산조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가야금 연주자로서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2010년 국악 전문 음반사인 악당이반 대표로부터 가야금 독주회와 음반 발매를 권유받아 첫 공연을 2011년 서울 북촌에서 열었어요. 이후 공연활동은 꾸준히 했지만 음반은 제가 부족한 게 많아서 결심이 서지 않았죠. 이제서야 가야금 소리의 흥과 한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서 작업하기로 했습니다.”

가야금 산조는 반주 장구를 곁들인 가야금 독주곡으로 가야금 병창(가야금을 연주하며 판소리나 단가의 유명한 대목을 따로 떼어 부르는 것)과 함께 196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한 바탕(곡조)을 연주하는 데 보통 30~60분 걸린다. 조세린 교수는 이번 음반에서 55분짜리 ‘성금연류 산조’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가야금 산조의 유파 중 하나인 성금연류 창시자 성금연 명인의 딸인 지성자 명인을 사사 중이다.

조세린 교수는 미국 워싱턴DC에서 태어나 3살부터 알래스카에서 자랐다. 그런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동아시아 문화에 익숙한 집안 환경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공군 장교였던 할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에서 근무하면서 중학교를 일본에서 다닌 변호사 아버지는 자녀들을 데리고 일본·홍콩 등을 자주 방문했다. 조세린 교수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어 열일곱살 때는 일본, 스무살 때는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유학했다”며 “그때 일본의 전통악기인 고토를 배웠고, 중국에선 쟁과 서예를 익혔다”고 말했다. 그는 서너살 때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을 연주했을 정도로 악기에 재능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도 고토·쟁과 비슷한 현악기인 가야금이 있다는 말을 듣곤 대학 졸업 후 스물두살 때 한국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그리고 1992년 국립국악원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이지영 서울대 교수, 강정숙·지애리씨 등 가야금 대가들을 사사했다. 이후 강은경 선생에게서도 병창을 배웠다. 2005년엔 가야금 관련 논문으로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는 “조세린이라는 한국식 이름은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신림동에서 하숙할 때 하숙집 오빠들이 지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전통음악을 멀리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그 원인을 “평소 국악을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교육의 근대화가 기독교 선교사들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서양음악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민속음악인 국악은 멀리하게 됐다”는 것이다. 조세린 교수는 “대학에서 교양으로 가르치는 국악수업 때 공연 관람 숙제를 내주는데 학생들이 하나같이 ‘국악이 이처럼 좋은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최근 ‘이날치 밴드’ 열풍만 봐도 국악은 어렵지 않고 재밌는 음악”이라고 단언했다.

그에게 가야금은 어떤 의미일까.

“고토와 쟁도 훌륭한 악기이지만 가야금 소리를 듣곤 너무 좋아서 ‘이거다’ 싶었어요. 가야금이 없었다면 한국을 알지도 못했고, 예술이 뭔지도 몰랐을 겁니다. 가야금을 통해서 희로애락으로 가득찬 인생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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