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 책임 회피한 법무부 '뒷북 대책'

이보라 | 사회부 2020. 12. 3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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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법무부가 지난 31일 구치소 내 코로나19 집단감염 대책을 발표했다. 서울동부구치소 관련 최초 확진자가 지난 11월27일 발생한 뒤 약 한 달 만이다. 늦게라도 대책을 내놓은 건 다행이지만 그 과정에서 몇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법무부는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구치소 실태를 가리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법무부는 전날 오후 9시쯤 이용구 차관의 발언을 미리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화상 기자회견이 진행될 상황에서 발언을 사전 배포해 질문을 취합하려는 목적이었다. 최종안은 이날 발표 시작 직후 배포됐다.

최종안에는 발언 초안과 달라진 내용이 있었다. 900명 이상 확진된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원인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초안에는 “시설 내 확산 원인이 고층빌딩 형태의 건물 5개 동과 각 층이 연결된 시설 구조와 취약한 환기 설비, 비좁은 공간에 다수의 수용자가 밀집하여 생활하는 수용환경” 등으로 추정된다고 적혔다. 최종안에는 “취약한” “비좁은 공간에”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법무부 측은 “초안은 사전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 위해 배포한 것으로 발언 요지가 담긴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실무진이 초안을 작성했고 이 차관이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을 보면 동부구치소 수용자들이 사는 공간은 1인당 3.4㎡(약 1평)에 불과해 ‘비좁은’ 게 사실이다. 보안이 요구되는 구조 특성상 환기 설비도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보안상의 이유로 상세한 구치소 내부 구조를 비공개할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문제의 온상이 된 구치소 실태를 감출 필요가 있었을까. 실태를 숨기기보다 투명하게 드러내 외부의 진단과 해결책을 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법무부의 대책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미 대부분 교정시설이 수용 정원 100%를 초과하는 과밀수용 상황에서 미확진 혹은 잠복기 수용자를 다른 교정시설로 분산 수용하는 게 효과적일지 의문이 제기됐다. 사태 발생 이후 동부구치소에서 서울남부구치소로 이감된 수용자들이 대거 확진된 사례에서 보듯 미확진 또는 잠복기 수용자들의 다른 시설 분산 과정에서 감염 확산 우려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법무부도 이날 발표한 대책 중 하나인 가석방 등을 확대해 수용인원 조절에 주력하는 게 좀 더 근본적인 조치가 아닐까.

이보라 | 사회부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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