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위원장 "탄소중립은 정권·이념이 아니라 인류와 지구가 죽고 사는 문제" [우리, 탄소중립 (1)]

임아영 기자 2020. 12. 3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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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위원장이 말하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

[경향신문]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기후환경회의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한국이 나아가야 할 탄소중립의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54일간의 최장 장마, 잦은 태풍과 폭우로 기후변화를 체감했던 한 해를 지나고 2021년이 밝았다. “어쩌면 지금이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에 대응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77)은 말했다. 산업혁명 이후 경제 논리를 앞세워 환경을 일방적으로 희생시켜온 인류의 성장이 이미 임계치에 달했다는 것이다. 한국인 최초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그는 2015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는 파리협정 체결을 주도했지만 정작 한국은 그간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으로 불려왔다. 선진국이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동안 한국은 100% 넘게 배출량을 늘린 데다, 온실가스를 내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수출해서다.

반 위원장은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내놓으면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면서 “우리는 기후위기의 피해자이자 해결사이다. 나와 우리 가족, 나아가 사회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국가기후환경회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정부 ‘2050 탄소중립 선언’ 내놓자
‘기후 악당’이었던 한국 평가 변화
코로나19 같은 위기 재현 막으려면
성장 최우선이란 패러다임 바꿔야

- 2050 탄소중립 선언은 한국이 ‘기후악당’ 꼬리표를 떼는 첫걸음입니다.

“한국의 장점이 무궁무진한데도 국제사회에서 ‘악당’ 소리를 들으니 그간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2050 탄소중립 선언’(2020년 10월)이 전격 발표된 이후에는 ‘중국과 일본, 한국도 하잖냐’며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어요. 온실가스 감축을 안 할 것 같던 나라까지도 드디어 나섰다는 거죠. 파리협정 이행에 한국도 기여하게 돼 다행입니다.”

-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한층 더 시급해진 경제성장과 기후위기 문제 해결이 동시에 가능할까요.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은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 나가는 그날엔 국가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국가의 희망과 발전’으로 칭송받을 만큼 경제발전이 최우선의 가치였습니다. 그걸 나무랄 수 없어요. 반면 18세기부터 산업혁명을 해온 유럽·미국은 산성비, 미세먼지를 다 겪고 50년 전에 이미 체제를 전환했습니다. 코로나19 같은 위기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 ‘성장을 위한 성장’만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야생동물 서식지가 사라지고 기후가 변하면서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발생했어요. 경제성장을 하느라 생태계를 파괴하고 화석연료를 태워서지요. 경제 논리를 앞세운 환경의 일방적 희생이 이미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어요. 최근 잦은 기상이변에 따른 재난으로 경제적 손실이 막대합니다. 세계자연기금은 2050년까지 9조8600억달러(약 1경1708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분의 1이나 돼요.”

- 경제성장도 하면서 기후위기도 해결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제 재킷의 이 동그란 배지 보이시죠? 2016년부터 시행된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17가지 공동목표를 상징하는 17가지 색깔입니다. 이 중 13번째 짙은 녹색이 바로 ‘기후행동’이죠. SDG는 인간 사회와 지구, 자연 전체를 통틀어 보는 개념으로 1987년에 나온 발상이에요. ‘지속 가능’하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 자손들이 쓸 수 있는 자원을 남겨놓고 현재의 번영과 미래를 추구한다는 겁니다. 남 먹을 것까지 다 끌어다 쓰면서 우리만 잘 사는 게 아니고 우리 후손까지 잘 살게 하자는 거죠. 경제를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그린뉴딜’이 필요하죠.”

SDG는 지구상 모든 형태의 빈곤을 끝내고, 모두를 위한 교육을 보장하며, 양성평등과 여권 신장을 실현하고, 모두에게 깨끗한 물과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불평등을 해소하며, 지속 가능한 도시를 조성하는 등 거의 모든 과제를 아우른다. 파리협약과 더불어 반 위원장이 유엔 사무총장 재임 때 국제사회에서 끌어낸 주요 합의로 꼽힌다. 코로나19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정표로 주목받고 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한국전력공사의 베트남 신규 석탄발전소 사업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그린뉴딜’ 통한 순환경제 전환 때
정부가 기존 산업 부담 덜어줘야
석탄발전 감축은 세계적인 추세
정부 임기 넘어서는 긴 안목 필요

- 그린뉴딜은 어떤 방식입니까.

“그린뉴딜은 기후인지예산, 그린뱅크 등 재정·금융 인프라와 시장제도를 개편해 저탄소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고 순환경제로 전환하는 겁니다. 순환경제는 경제활동에 투입되는 물질이 폐기되지 않고 유용한 자원으로 반복되는 경제 구조인데요. 이 과정에서 기존 탄소집약적 산업에 바탕을 둬온 지역과 계층에 대해서는 정부가 부담을 완화해줘야 합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하는데, 관련 산업과 종사자들을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 여전히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은 전환의 필요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이 상당했습니다. 특히 기존 산업들의 반발이 상당해요. 화석연료를 안 쓰는 전기차·수소차를 만들자 하니까 자동차 산업계에서 들고일어났죠. 그런데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봐야 해요. 노르웨이는 2025년, 독일·영국·인도는 2030년 내연기관차를 판매할 수 없게 돼요. 한국은 5대 자동차 산업국인데 2035~2040년쯤 제일 중요한 수출국인 미국·유럽에 내연기관차를 팔 수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계가 바뀌고 있다면 우리도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재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여러분이 확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습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석탄발전을 2045년 또는 그 이전에 ‘제로’로 감축하자고 제안했는데요.

“세계적으로 석탄발전 감축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입니다. 한국은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상 EU의 탄소세 도입 등에 직접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2017년 기준으로 국내 온실가스의 28%를 차지하는 석탄발전의 감축은 탄소중립을 위한 필수 과제입니다. 그러나 설계 수명상 마지막 석탄발전소가 2054년에 폐쇄될 예정이므로 이번 정책 제안은 석탄발전 가동기간을 10년 정도 앞당기는 수준입니다.”

- 현재 석탄발전 비중이 40.4%(2019년)로 매우 높은데 탈석탄을 할 수 있을까요.

“현재 발전 비중의 40%에 달하는 석탄발전을 0으로 하는 것은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가져올 겁니다. 정부 임기를 넘어서는 긴 안목과 의지를 갖추고 추진해야 합니다. 정부는 ‘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석탄발전 감축을 추진 중이고 향후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하면 핵심 과제로 추진할 것입니다. 다만 감축 과정에서 전력 수급 차질이나 과도한 비용 부담이 없어야 하는데, 석탄보다는 덜하지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LNG발전 등도 당분간은 필요합니다.”

- ‘2050 탄소중립위원회’ 설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대통령 직속의 ‘2050 탄소중립위원회’ 신설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지난해 중장기 과제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녹색성장위원회, 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 국가기후환경회의 통폐합 등 재정비를 청와대에 제안했습니다. 또 탄소중립 과제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야 하므로 연속성 유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아 힘을 실을 필요도 있습니다. 지도자가 얼마나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 미래의 운명, 세계의 운명이 같이 가는 겁니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돼도 탄소중립은 2050년까지 가야 합니다. 정권·이념과 관련없는 인류와 지구의 공동 운명 문제예요. 죽고 사는 문제죠.”

2015년 12월12일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가운데)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파리협정 체결에 환호하고 있다. 파리 | AP연합뉴스
‘범생이’처럼 오바마 설득했는데
최근 국제 협력 균열은 안타까워
코로나로 각자도생의 위험 드러나
위기에 대응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 기후변화와 관련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늘 쉽지는 않으셨겠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최근 회고록을 보니 저에 대해 ‘범생이(nerdy kid)’라고 했어요. 고교 졸업무도회에 같이 가자고 여학생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남학생에 비유한 거예요. 처음엔 귀찮게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기후변화 이야기를 하니까 ‘상원에서 안 되고 중국이 안 하는데 우리만 해야 하느냐’고 오바마 대통령이 응수했죠. 제가 G8 정상회의 가서도 이야기하고 백악관 가서 또 이야기하고 계속 이야기하니까 할 수 없이 들어줘야겠다 한 거예요. 이 친구가 댄스파티 가자고 해서 할 수 없이 가야 되겠다고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얘기한 부분이 나와요. 혼자 보고 속으로 웃었죠.”

-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면 다자간 협력이 중요한데, 최근 국제사회 협력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우려가 큽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 파리기후협정과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발표 등 국제사회의 다자주의 쇠퇴 경향을 보면서 전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각자도생의 자세는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뿐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구적 위기를 맞아 다자주의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입니다. 어쩌면 지금이 기후변화·팬데믹 등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에 대응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 당사자인 국민의 공감대 형성과 동참 노력도 중요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조기교육을 통해 환경에 대한 개념을 의식적으로 내재화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웨덴의 16세 소녀 툰베리를 보며 유소년 대상으로 환경교육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기후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피해자이자 해결사입니다. 이 문제가 나와 우리 가족, 나아가 사회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대담 | 최민영 경제부장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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