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채경의 랑데부] 새해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한겨레 2020. 12. 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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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채경의 랑데부]
작년 한해 동안 많은 것을 멈춰야 했던 이들을 생각하면 올해에는 새해맞이 같은 것을 하지 말고 나이를 안 먹기로 약속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심채경ㅣ천문학자

새해가 되었다. 팬데믹으로 마음은 소란하고 집콕 하느라 몸은 운동 부족인 채로 어찌할 바를 모르며 황망하게 두리번거리다 보니 어느덧 한해가 다 지나버렸다. 달력은 오늘부터 2021년이 시작된다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으니 오늘이 가수 별의 노래처럼 ‘12월32일’이라고 해도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어쩌면 설을 앞두고 있고 띠도 바뀌지 않았으니 음력으로는 아직 새해가 아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는 3월이 되어야 ‘진짜’ 여덟살이고 그 전까지는 ‘가짜’ 여덟살이라고 한다. 드디어 나이 서른을 맞은 후배는 생일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본인은 아직 이십대라고 우긴다. 지난여름에 이직한 나는 올해에도 여름이 되어야 1년치 연차 개수를 정산한다. 그러고 보니 한해에는 1월1일 말고도 수많은 시작점이 있다. 1년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 것일까?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바퀴 도는 데에는 365일 하고도 대략 여섯시간 정도 더 걸린다. 1년이 24시간으로 나누어떨어지지 않아서 남는 여섯시간을 네번 모아 하루를 더 만든다. 우리가 4년에 한번씩 윤년을 맞는 이유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이번에는 몇십분이 모자라서 100년에 한번씩은 평년, 400년에 한번씩은 다시 윤년으로 정한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나눗셈이 깔끔하게 끝나지 않고 400년마다 몇십초의 오차가 생긴다. 그 오차도 언젠가는 쌓이고 쌓여 또 하루가 되겠지만, 지금의 규칙을 정한 지도 439년밖에 안 된 터라 더 이상의 규칙은 아직 없다. 후손들이 알아서 정할 일이다. 지난해가 윤년이라 2월이 29일까지 있었는데, 만약 윤년 규칙이 바뀌어 작년이 평년이었더라면 올해 1월1일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을 테니 뒤늦게 새해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게다가 애초에 1월1일이 지구라는 자연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천문학에서 한해의 기준은 그 행성의 춘분점이다. 지구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서 낮이 밤보다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데, 북반구의 밤과 낮이 가장 긴 날이 각각 동지와 하지, 밤낮의 길이가 반전되는 시점이 춘분과 추분이다. 그중 춘분을 궤도 좌표의 기준점으로 삼는다. 그러니까 지구뿐만 아니라 화성이나 토성에도 춘분점이 있다. 외계 행성에도 춘분점이 있는데, 우리 태양계처럼 별이 중심에 하나만 있을 때 그렇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행성 타투인처럼 두세개의 별이 하나의 행성계를 거느리는 곳이라면 춘분점을 따지기가 조금 곤란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쪽 별을 기준으로 하는 제1춘분점, 다른 별을 기준으로 하는 제2춘분점 하는 식으로 구별해서 부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 행성의 궤도를 논할 때가 아니고서야 춘분점이라는 이름은 무색할 수도 있겠다.

비록 달력에 아주 조그맣게 적혀 있어서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춘분과 추분, 하지와 동지가 지구 궤도상 중요한 4개의 지점에 해당한다. 스마트폰으로 일정 관리를 한다면 더더욱 모르고 지나가기 일쑤지만, 천문학자들은 이날에 조금 더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대단한 행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선배 한분은 매년 춘분에 미용실에 파마하러 가는 것이 중요한 연례행사다. 하짓날마다 모여서 노는 이들도 있다. 낮이 가장 긴 날이니 저녁 먹고 조금 늦게까지 놀기에 딱 좋은 날이 아닌가.

오늘날과 같은 달력이 전세계에 통용되기 전에는 지역마다 한해를 시작하는 날이 달랐다. 이집트에서는 별 시리우스가 나타나고 나일강의 범람이 시작되는 시기를,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성탄절이나 부활절을 새해의 시작으로 보았다. 고대에나 현대에나 계절이 반복되는 경향을 가늠하고 한해의 길이를 맞추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시작점이 꼭 지금의 1월1일일 필요는 없다. 전 국민이 동시에 나이를 한살 더 먹기는 했지만, 작년 한해 동안 많은 것을 멈춰야 했던 이들을 생각하면 올해에는 새해맞이 같은 것을 하지 말고 나이를 안 먹기로 약속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새해 첫날이라고 해가 유독 힘차게 솟아오를 리는 없다. 해는 계절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위치에서 뜰 뿐이다. 그러니 해돋이는 아무 때고 보러 가도 된다. 해돋이를 보러 가야만 한다고 당신의 마음이 속삭일 때면 연중 언제라도 말이다. 구름이 가득하거나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그 너머에서 해는 반드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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