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문 당선소감 - 내 안팎 드나들며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2021 경향 신춘문예]
[경향신문]
글을 쓰면 종종 “시적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시적이라는 게 뭔지 궁금해서 아예 시를 써봤는데 생각보다 잘 맞았다. 마음속에서 덜컥거리는 것, 어두운 것들을 꺼내 썼다. 흐릿하게 써도 되니까. 모호하게 써놓고 시라고 이름 붙이면 되는 줄 알던 때도 있었다.
가던 길의 방향을 틀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친구들과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글쓰기’ 스터디원들에게 감사하다. ‘지금-여기의 시 쓰기’ 친구들이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면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에게도 고맙다. 동생들과 아빠, 그리고 엄마. 나는 자주 엄마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만삭의 몸으로 백일장에서 가을 강을 바라보며 글을 쓴 이야기. 상으로 받은 세계문학 전집을 들고 퇴근한 남편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듣고 있으면 그 어린 부부와 내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가, 이내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아진다. 그러니까 이 상은 사랑하는 당신과 내가 함께 받는 두 번째 상이다.
삶은 계속 모호하겠지만, 정확한 시를 쓰고 싶다. 또 다른 시를 꿈꿀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린다. 이제 내 안팎을 유연하게 드나들면서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과 닮은 글을 쓰고 싶다.
마지막으로 허술하고 이상한 나를 견뎌준 동윤에게 많이, 깊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윤혜지 △1984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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