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부문 심사평 - 말해지지 않음으로 더욱 풍성해지는 이야기 [2021 경향 신춘문예]

심사위원 성석제·하성란 2020. 12. 3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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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성석제·하성란

본심에 올라온 열두 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소설의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순간을 채는 기민함에서 한곳을 진득하게 응시하는 시간까지, 그들이 치열하게 감당해온 그 시간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중 두 편의 소설에 특히 눈길이 갔다.

‘메이드 인 뉴잭스윙’은 미군기지 근처의 버거집에서 일하는 철구와 그를 향한 비딱한 시선이 섞인 ‘나’의 화법이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읽히는 소설이다. 사장인 듯 지나친 소속감을 가졌다는 이유로 철구가 해고당할 때나 자신이 개발한 버거임에도 소유권을 내세우지 못한 내가 전전긍긍할 때조차도 뉴잭스윙의 비트감이 잔향처럼 실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 청년들이 선 그 자리가 단번에 파악된다. 미국에 간 철구에게 쏟아지는 “네가 왜 여기에 있냐?”라는 질문이 결코 이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이 손가락질을 당하듯 아픈데, 끝내 두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잘못 탄 지하철에서 내리지 못하는 나의 행동이 다소 수동적인 것은 아닐까. 반짝 인기를 끌다 사라진 뉴잭스윙과 그것을 좋아한 철구가 “좋았던 시절을 못 놔주는 어른들의 모습”으로만 읽혀도 되는가.

‘나에게’는 막 담임을 맡은 교사인 ‘나’와 적록색맹을 가진 소린이라는 학생의 소소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교사 일색인 집안에서 나의 바람과 달리 교사가 되고 만 중압감과 마음가짐, 실수 등 교사의 일상도 흥미롭지만 이 소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말해지지 않는 이야기’이다. 편린처럼 드러나는 이야기, 말해지지 않음으로 더욱 풍성해지는 이야기. 구체적으로 말해지지 않는데도 땅속 깊은 뿌리처럼 소설 전체를 장악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어쩌면 이 소설은 “본 적 없는 복사꽃”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내가 보는 풍경을 소린은 볼 수 없고 소린에게 보이는 풍경을 나는 볼 수 없다. 오해와 이해 속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압도적이다. “벚꽃과 바람이 으르렁거리며 사투를 벌이는” 듯한 창문 밖 벚꽃 풍경은 이 소설을 읽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창가로 이끌어 자신이 경험한 “봄 한가운데” 세운다. 전율이 끼치는 놀라운 장면이다. 오랜 논의 끝에 ‘나에게’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성석제·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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