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최고참 민정수석
[경향신문]
법조계에는 기수문화라는 게 있다. 군대에서 군번, 대학에서 학번을 따지듯이 사법연수원 기수를 따진다. 로스쿨 제도 도입 전에는 사법시험을 통해 법률가를 전원 선발했는데, 최종 합격자는 사법연수원에서 2년의 수료 과정을 마쳐야 판사·검사로 임용되거나 변호사로 개업할 수 있다. 연수원 기수가 높다는 건 그만큼 판검사 근속연수가 길거나 변호사 경력이 오래됐다는 뜻이다. 법조계 연공서열의 기준인 셈이다. 언론이 법조계 인사들을 언급할 때 이름 뒤에 나이와 사법연수원 기수를 병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위계질서가 강한 검찰에서 기수문화는 더욱 도드라진다. 현 정부의 기수 파괴 인사로 줄었다고 하지만 기수문화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동기나 후배 기수보다 고검장·검사장 승진이 늦거나 동기·후배 기수가 검찰총장에 오르면 지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옷을 벗는 관행이 남아 있다. 2019년 7월 전임 문무일 총장(사법연수원 18기)에서 5기수 건너뛴 윤석열 총장(23기)이 임명되자 19~22기 고검장·검사장이 대거 물러난 것이 비근한 예다.
기수문화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청와대 민정수석 간에도 영향을 준다. 검찰총장은 검찰을 지휘하고, 법무부 장관은 그런 총장을 지휘·감독한다. 민정수석은 검찰에 대한 대통령의 민주적 통제를 보좌하는 자리다. 하지만 같은 조건이라면 세 사람 중 사법연수원 기수가 높은 쪽에 힘이 실리는 경우가 많다. 이명박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경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기다. 당시 정동기 민정수석(8기), 임채진 총장(9기)보다 7~8기수 선배인 그는 ‘실세장관’으로 불리며 검찰 인사를 쥐락펴락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신현수 변호사를 신임 민정수석에 임명했다. 참여정부 때 문재인 민정수석 밑에서 사정비서관을 지낸 그는 현 정부에서 여러 차례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하마평에 오를 만큼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검찰을 알아야 개혁도 하고 ‘민주적 통제’도 하는데, 전임들과 달리 검찰 출신이라 검찰 생리에 밝다. 신 수석은 사법연수원 16기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내정자, 윤 총장보다 7기수 선배다. 그를 둘러싼 모든 조건이 임기말 민정수석실의 역할 확대를 예고하는 듯하다.
정제혁 논설위원 jhju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세청장 후보자 처가일가, 매출 8000억원대 가족기업 운영···“이해충돌 소지”
- 성폭행·고문·장기 적출 위험에 노출된 사하라 사막 난민들
- [국대 감독선임 막전막후] 돌고 돌아 홍명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 ‘난 태국인이야’ 블랙핑크 리사의 진화···K팝 스타에서 팝스타로
- 검찰, 김건희·최재영 면담 일정 조율한 대통령실 ‘여사팀’ 행정관 소환조사
- 연판장 사태로 번진 ‘김건희 문자’···“김 여사 전대 개입” 역풍 전망도
- [단독] 지역 농·축협 공동대출 연체율 6배 급증…부동산 한파에 건전성 ‘비상’
- ‘수상한 현금 뭉치’ 울산 아파트 화단서 수천만원 돈다발 잇따라 발견
- 한동훈 “사적 통로 아닌 공적으로 사과 요구했다고 연판장? 그냥 하라”
- 대낮에 길거리에서 둔기로 60대 어머니 폭행한 30대 아들 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