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바이러스뿐 아니라 양극화도 극복하는 한해 되길

한겨레 2020. 12. 3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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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새해가 사실상 문재인 정부 임기 마지막 해
빈부격차 줄일 큰 그림 제시하고 결단해야
집값안정·검찰개혁 등 민생·개혁과제 완수를
새해 첫날의 해돋이 장면. 2021년은 코로나 고통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모두 웃음을 되찾을 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해는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저문 한해였다. 연초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던 미증유의 위기가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를 지배했다. 긴 고통의 시간을 버텨내온 모두에게 깊은 위로를 드린다.

우리는 1, 2차 유행 때만 해도 ‘세계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을 만큼 신종 감염병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 방역당국의 노력, 의료진의 헌신, 국민들의 협조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진행 중인 3차 유행은 1, 2차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요양병원과 교정시설 등 집단시설의 감염 확산 사태가 심상찮다. 정부의 안이한 대처와 늑장 대응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집단시설에 대한 방역체계를 서둘러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영국 변이 바이러스’도 걱정을 키운다. 국내에선 아직까지 공항 검역 단계에서 걸러지고 있지만, 기존 바이러스보다 감염력이 70%까지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만에 하나 지역사회 전파로 이어진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방역당국은 상황 관리와 대응에 한치의 빈틈도 없어야 할 것이다.

현재 감염 확산 차단의 관건은 백신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이 거리두기의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것도 백신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87%가 백신을 접종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금까지 약 5600만명분의 백신을 확보했으며 이르면 2월부터 접종을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비상한 각오로 계획을 차질 없이 집행해야 한다. 국내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를 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 못지않게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게 코로나발 경제·사회적 충격을 해소하는 일이다. 코로나가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를 키우고 있다. 누구도 코로나 감염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코로나 충격의 결과는 불평등하게 나타나고 있다. 소상공인, 임시·일용직, 특수고용직노동자 등 취약계층일수록 피해와 고통이 배가되고 있다. 최근 2년간 개선됐던 소득격차가 지난해 다시 커진 이유다. 이대로 가면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경제 회복이 K자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알파벳 K처럼 소득수준·고용상태·업종·기업규모 등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얘기다. 정부의 재정 역량을 최대한 동원해 아래쪽을 끌어올려야 한다. 한정된 재원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취약계층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이 불가피하다. 국민들도 나보다 힘든 이웃을 좀 더 배려하고 양보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으면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코로나 위기를 양극화 해소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회적 논의를 통해 사회안전망 확충과 재원 조달 방식의 큰 그림을 그리고 합의에 근거해 결단을 내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연대세나 부유세 신설, 전국민 고용보험 조기 도입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내년 3월9일 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것을 고려하면, 올해는 사실상 문재인 정부 임기 마지막 해다. 국민에게 약속한 민생·개혁 과제를 마무리할 시간이 1년 남은 것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확고한 의지를 갖고 용기를 낸다면 많은 일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의지가 살아 있는지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명실상부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

민생 과제 가운데 가장 큰 난제는 집값 안정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가장 많이 깎아먹는 것은 ‘조국 사태’도 ‘추-윤 갈등’도 아닌 부동산정책 실패다. 많은 국민이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아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보유세 강화와 투기 억제 기조를 이어가되 역발상의 공급 대책을 통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바란다.

검찰개혁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엔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절차의 정당성 논란과 징계 무산에 따른 혼란 때문에 검찰개혁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일었다.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뼈아프게 돌아보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방식으로 흔들림 없이 검찰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새해엔 남북관계 돌파구도 찾아야 한다. 북한이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전후 도발에 나서지 않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초 전향적인 대북 메시지를 보낸다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할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 연초부터 긴밀한 한-미 협의와 남북 접촉에 나서야 한다.

문 대통령이 연말 청와대 개편과 개각을 단행했다. 또 연초에 추가 개각이 있을 거라고 한다. 인적 쇄신을 통해 국정 운영의 동력을 살리겠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거의 예외 없이 마지막 해에 레임덕에 빠졌다. 레임덕은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국민과 나라에도 불행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 겸허한 자세로 국정 운영에 임하길 바란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도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다하되, 국난 극복을 위해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대승적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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