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미래 훼방의 유령

송영규 기자 2020. 12. 3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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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 교수
백신접종까지 경기회복 힘든데
경기부양법 규모 줄고 너무 늦어
조지아주 상원 결선투표 이후엔
공화당의 경제 사보타주 우려도
폴 크루그먼
[서울경제] 최근 의회를 통과한 미국의 경기 부양 법안은 경제 띄우기가 아닌 재난 구제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제 역할을 다 하기에는 너무 늦게 나왔다. 수많은 실직자들과 기업들에 대한 1차 긴급 지원은 이미 수개월 전에 종료됐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이번 합의에 따라 이 중 일부 지원책이 재가동되지만 지난봄과 여름에 비해 규모는 대폭 줄어들었다. 우선 주당 600달러였던 긴급 실직 수당이 300달러로 반 토막이 났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지금까지 일자리를 잡지 못한 실직 근로자들은 이번 조치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소득의 평균 85%를 손에 쥐게 된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미국인들에게 1회에 한해 개별적으로 지급되는 600달러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지만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이 전체 경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요성 역시 긴급 실직 수당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그렇다면 새로운 포괄적 부양 패키지에서 가장 마땅치 않은 것으로 무엇을 꼽아야 할까. 기업 식비에 대한 감세 조치다. 대기업 임원들이 와인 석 잔을 곁들인 식사를 하는 것을 지원하는 게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말일까.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번 부양책이 너무 일찍 종료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실업 수당에 주당 300달러씩을 얹어주는 긴급 실직 수당 조항은 11주 뒤면 종료된다. 게다가 이 법안의 합의 과정도 미래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안겨준다.

11주가 충분치 않다는 근거가 무엇일까. 미국인들 대다수가 백신을 접종할 때까지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내년 여름 혹은 가을에야 충분한 백신 접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게다가 일자리도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1,000만 개나 줄어든 상태다. 설사 지난 5월과 6월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일자리를 되살렸다고 해도 완전고용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새로운 법안이 코로나19 종식 이후의 미래로 연결되는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하겠지만 크게 벌어진 간격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법안이 통과된 과정 역시 공화당이 고용과 성장 회복을 위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프로젝트에 기꺼이 협력할 것이라 낙관하기 어렵게 만든다.

기억할 점은 최근까지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가 구제 패키지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그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간단하다. 조지아주의 상원 결선 투표 때문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결선 투표를 앞둔) 켈리 레플러와 데이비드 퍼듀가 공화당이 긴급 지원을 제공하지 않고 버티는 탓에 악전고투 중”이기 때문이다.

일단 내년 1월 5일 조지아 상원 결선 투표가 마무리되면 매코널은 구제안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두 건의 결선 투표에서 모두 승리하지 않는 한 그는 여전히 상원의 공화당 원내대표 자리를 유지할 것이고, 민주당의 추가 경기 부양 노력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뿐 아니다. 이번 부양 안의 최종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만난 마지막 장애물은 버락 오바마 시절에 우리가 배웠어야 할 교훈을 떠올리게 만든다. 민주당이 백악관을 장악하면 공화당은 어김없이 경제에 대한 사보타주를 시도한다. 그리고 필요한 정부 지출을 차단하기 위해 예산 타령을 늘어놓는다. 여기에 보태 공화당은 금융 위기 리스크를 고의적으로 키우려 든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필요한 재정 부양책 시행을 가로막기 위해 공화당이 쏟아낸 말들을 기억해보라. 공화당은 단순한 예산 적자 매파 역에 그치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난을 퍼부으며 연방준비제도의 경제 회복 노력을 방해했다. 그리고 지금 당시의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배경부터 살펴보자. 팬데믹에 따른 경기 침체가 심하기는 해도 최악은 아니다. 3월 몇 주 동안 미국은 금융 위기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도산 이후의 금융 위기에 접근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위기 상황은 연준에 의해 신속히 억제됐다. 연준은 수조 달러어치의 금융자산을 매입하는 한편 필요한 경우 추가 매입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시장을 안정시켰다.

이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금융 위기 리스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연준이 미래의 도전에 맞서는 데 필요한 도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곧 이임하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그의 후임자가 사용할 수 없도록 연준의 긴급 대출 프로그램 지원 예산 중 수천억 달러를 줄여버렸다. 이번 경기 부양 협상은 이런 프로그램들 중 일부 혹은 이와 유사한 모든 프로그램을 연준이 재가동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팻 투미 상원의원의 막판 요구에 공화당 지도부가 지지를 표명함에 따라 거의 결렬될 뻔했다.

결국 이 같은 독소 조항은 동일한 모방 프로그램을 차단한다는 공화당의 체면치레용 문구를 삽입하기로 합의하는 선에서 사실상 무력화됐지만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약간 다른 프로그램이 들어설 여지를 남겨뒀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이다. 만약 또 다른 위기가 닥친다면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의 효과적인 대응을 막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이번 긴급 구제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물잔이 반이나 차 있다는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수백만 미국인 가정들은 앞으로 2~3개월 동안 긴급 구제안으로 조금은 덜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다음은 물잔이 반이나 비었다는 부정적인 견해다. 민주당이 조지아주의 연방 상원 의석 두 석을 모두 차지하지 못한다면 수백만 가구들에 내년 봄은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이고 앞으로 수년간 공화당의 노골적인 경제 사보타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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