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유재석 원톱 체제 구축의 원년으로 기억될 거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0. 12. 3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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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예능 총평은 '유재석의 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0년 예능 총평은 '유재석의 해'라고 정리할 수 있다. 팬데믹이 1년간 지속되면서 예능의 동력은 무력화됐다. 대체로 함께 모여서 일을 벌이는 제작의 기본 상식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흐름이나 신선한 프로그램이 나타날 환경이 마련되지 못했다. 그나마 올해 여전했던 예능 공식은 TV조선이 제시한 TV콘텐츠의 '현재성'밖에 없다. 그들이 보여준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하는 콘텐츠들이 방송가 전반을 장악했지만 예능의 미래라는 '패러다임'으로 확장되지는 않았다.

이런 혼돈 속에 두각을 나타낸 건 <1박2일>, <런닝맨>, <미우새> 그리고 <무한도전>의 후신이라 볼 수 있는 <놀면 뭐하니?> 같은 장수 예능이다. 확고한 틀과 안정적 팬층, 제작 노하우, 오랜 호흡을 자랑하는 출연진들로 구성된 프로그램들은 신규 예능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비교적 선방했다. 특히나 SBS연예대상 김종국을 배출한 <런닝맨>은 별다른 이유 없이 에너지레벨이 다시 올라가면서 재미의 밀도가 높아졌다. 김종민, 비, 황광희, 데프콘, 이효리, 엄정화, 화사, 제시 등과 함께 대세 히트작을 연달아 내놓은 <놀면 뭐하니?>는 올 한해 가장 폭발력 있는 성과를 낸 예능 프로였다. 29일 방송된 <MBC 연예대상>이 싱거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리고 <런닝맨>의 재점화, <놀면 뭐하니?> 폭발력의 중심에 유재석이 있다. TV를 벗어나 다른 콘텐츠 플랫폼에 도전한 김구라나 이경규, 박명수 등 많은 예능인들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긴 했지만 그중 가장 다양한 시도 속에 다채로운 매력과 능력을 발산한 예능인은 단연 유재석이다. <런닝맨>에서는 좀처럼 벗어나지 않던 '바른 틀'을 버리고 손도 올리고 발길질도 서슴지 않고 하는 등 훨씬 자유롭고 개구진 모습을 보이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놀면 뭐하니?>에서는 영혼의 단짝 김태호 PD와 함께 '부캐' 전성시대를 열면서 철저한 자기관리, 아직도 꺼내볼 것이 많이 남은 깊은 내공, 익숙함과 신선함의 기막힌 줄타기 신공으로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특히 <놀면 뭐하니?>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변화의 포인트다. 늘 함께하거나 자신이 편애하는 멤버들과 팀을 꾸리고 중앙에서 진두지휘하는 진행 스타일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플레이어가 되었다. 김종민처럼 지금까지 맞춰보지 않은 새로운 조합을 20년 만에 과감하게 시도했다. 이런 적극적인 변화 의지와 낮은 자세, 겸양은 유재석의 '국민MC' 캐릭터가 또 한 번 광택을 발하는 이유다.

뿐만 아니다. <런닝맨>의 황금기를 함께 구축한 정철민 PD와 함께한 신작 tvN <식스센스>와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 편에서 처음으로 여성 예능에 본격 도전하며 트렌드에 감응하는 유연함을 보였다. <식스센스>는 오합지졸, 개성만점의 캐릭터군단을 이끌고 나아가는 가장 전통적인 유재석식 진행의 매력을 볼 수 있는 무대인 동시에 국민MC의 현재 '폼'과 호감도를 느낄 수 있는 최신 예능이었다. 지난 10년간 런칭한 프로그램이 10편이 채 되지 않고, A급 예능 MC 중 가장 끝까지 지상파를 고수했으며, 연을 맺었던 PD하고만 다음을 도모하는 신중한 그의 행보와 변함없는 진행스타일 탓에 2017년 전후 유재석 콘텐츠 고착화 논란이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이런 격동적인 변화와 도전의 시간 한편에서 <유퀴즈>가 자리 잡고 앉아 유재석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유튜브 촬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단출한 설정 속에서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한 국민MC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팬데믹 이전에도 물론, 일반인들과 즉흥적인 인터뷰를 통해 재미를 만드는 토크쇼였지만, 많은 부분 재미는 유재석과 조세호의 일본식 만담형 진행에서 나왔다. 이 프로그램의 대표어인 '자기님'부터, 유재석이 조세호를 타박하려 시동걸 때 쓰는 '자기야'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즉흥적인 길거리 토크쇼가 어려워지면서 단순한 재미에서 의미로 중심축이 변화했다. 의미와 의도를 갖고 사회 각층의 셀럽과 이슈 인물을 만나는 짧은 호흡의 토크쇼로 변모하면서 <유퀴즈>는 사라지고 있는 토크쇼의 가치를 복원해냈다. <놀러와>시절부터 <해피투게더>까지 게스트에 대한 배려에 도가 튼 유재석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상식과 교감 능력을 보여주면서 매력적인 토크쇼로 거듭났다. 출판, 문화, 사회 등등 각 분야 저명인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교양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정우성, 공유 등 배우들 입장에서도 영향력도 있으면서 가장 세련된 홍보의 장이다.

자구책으로 택한 변화지만 유재석 브랜드의 넓은 스팩트럼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되는 집은 뭘 해도 되는 운의 이치다. 그러면서 2020년은 기존의 익숙함과 기대, 새로운 매력과 능력이란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한 유재석의 한 해가 됐다. 덕분에 유재석을 평가할 때 제2의 전성기를 운운하는 것도 어폐가 있고, 정점이 언제였다고 찍기도 어렵게 됐다.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1970년대생 예능MC들의 길고 긴 약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2020년을 기점으로 트로이카나 쌍두마차가 아니라 유재석 원톱 체제의 확고한 구축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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