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문제는 정치다, 바보야!

기자 2020. 12. 3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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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일자리, 태양광, 주택정책, 백신

文정권이 손댄 일 잘된 것 없어

정치와 먼 문화·스포츠는 성공

국민·국익·국격 없는 3無 정권

박근혜 정권 말기와 유사 상황

與 정치인 ‘약탈 행위자’ 행태

박근혜 정권 후반기에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면서 ‘3무(無) 정권’임을 실감했다. 전략도, 토론도, 전문가도 없었다. 결국 정권 말미에 사달이 났다. 현 정권을 보고도 비슷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정략은 수두룩하지만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회의는 많지만 ‘토론’은 없다. ‘전문가’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현 정권에는 직전 정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3무(無)’가 있다. ‘국민’이 안 보이고, ‘국가이익’은 뒷전이고, ‘국격’은 나뒹굴고 있다. 정치를 펴나가는데 ‘국민’은 온데간데없다. 모든 국민이 아니라 열성 지지 세력만 염두에 있다. 국민을 반으로 갈라놓고 지지하지 않는 반쪽은 마치 ‘적’을 대하듯 한다. 여당은 강력한 지지 세력이 한편 고맙기 그지없고 다른 한편으로 두려운 모양이다.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당리당략’은 여지없이 드러나는데 ‘국가이익’이 안 보인다. 불편부당(不偏不黨)한 국가이익이나 장기적 국가 비전보다는 선거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가 판정 기준이 된다. 다른 나라를 대함에 있어서는 ‘국격’이 없어 보인다. 중국에는 한없이 비굴하고, 북한에는 뭔가 해 주지 못해 안달이고, 미국에는 할 소리는 해야겠다고 하고, 일본에는 큰소리를 치다가 요즘은 미소를 보인다. 국가에는 모름지기 절도와 품격이 있어야 하는데, 적당히 상황 관리하기에만 급급하다.

현 정권에 닥치고 무조건 충성을 맹세한 그룹도 있지만, 정치라면 신물이 난다며 얘기조차 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 정권 얘기만 나오면 핏대부터 올리는 사람도 하나둘이 아니다. 이상스럽게도, 현 정권과 여당이 하는 일들이 자랑스럽다고 젠체하고 다니는 이들은 정말 보기 드물다.

여권을 보면 공정한 중개자라기보다는 약탈적 행위자에 가깝다고 느끼는 이가 많다. 정치인들도 국민의 혈세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사실상 ‘지대계급’이다. 그런데 마치 세금은 언제나 걷으면 되고, 쓰고 싶은 데 펑펑 써도 된다는 방만한 의식이 엿보인다. 선거철만 되면 조(兆) 단위의 예산을 동원해 대중 영합에 앞장선다. 다들 일단 받고는 보지만, 누가 뒷감당할 건지 뒷골이 서늘하다. 국민은 ‘통합’을 기대하는데 정치인들은 갈라치기에만 능하다. ‘반쪽만 우리 편이면 된다’는 정치공학만 무성하니, 국민 전체를 감싸 안는 상식과 합리에 기반한 결정은 보기 어렵다. 잘못된 것은 남 탓하고, 제 허물에는 눈감고, 불리하면 침묵하다가, 상황이 바뀌면 딴소리한다. 비판적·과학적 추론은 사라진 지 오래고, 고집과 독선만 남으니 보는 이들만 답답하다.

문제는, 현 정권에서 손댄 일 가운데 잘된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지지율이 빠지는 이유다. 원자력을 죽이고 태양광을 내세웠지만, 비리의 냄새가 진동하고 국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싸진 전기료 고지서뿐이다. 실업률을 줄였다고 하는데, 노인들 아르바이트 자리는 늘었지만 청년실업률은 늘고 취업 문턱은 좁아진 게 실상이다. 부동산 대책을 수없이 내놨지만, 가진 자는 ‘세금폭탄’을 맞아서 화나고, 좁은 집에 사는 이들은 좋은 집으로 옮겨갈 기회를 박탈당해서 열 받고, 서민과 무주택자들은 아예 ‘내 집 마련’ 꿈조차 꾸지 못하게 됐으니 시무룩하다. 계층 간 소득 격차를 줄인다더니 최하위 계층은 더 늘어나고, 코로나19가 겹쳐 자영업자들은 연명조차 힘든 판이다. K-방역은 잘하나 싶더니, 백신 구입은 뒷전에 두고 시민들만 옴짝달싹 못 하게 한다. 모두 정책 목표와는 역방향 질주다.

다행스럽게도, 정치가 손을 못 댄 곳에서 성공이 봇물 터지듯 한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거머쥐고,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1위를 하고, 손흥민은 축구로 나라를 드높이고, 트로트 열풍으로 새로운 국민 스타가 생겨난다. 문화예술과 스포츠는 실력이 우열을 가리는 곳이고, 정치가 좌지우지할 수 없어서다. 그나마 국민이 위안으로 삼을 곳이 있어 다행이다.

문제는 정치다(It’s politics, stupid!). 정치를 먼저 개혁하지 않고는 희망이 없다. 정치가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내 편 네 편 가리지 말고 ‘국민’을 배려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은 긴 호흡으로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잡아야 하며, 외교에는 ‘국격’이 바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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