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막막, 내년에도 일하고 싶다"..올해 마지막날 청소노동자 눈물 호소

온다예 기자 2020. 12. 3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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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어디서 일자리 구하나"..사측 "70세 정년은 수용어려워"
31일 계약 끝나지만..사측·노조 이견 좁히지 못해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 청소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피켓이 놓여져 있다 2020.12.30/뉴스1 © 뉴스1 온다예

(서울=뉴스1) 온다예 기자 = "이 나이에, 이 시국에 어디에 가서 일하겠습니까?"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7년간 청소노동자로 근무했던 A씨(63)는 지난달 말 용역업체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은 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며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A씨의 남편은 지병으로 앓아 누워 10년 가까이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 세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던 A씨는 식품공장에서 14년간 일을 하다가 7년 전 LG트윈타워 청소업무를 맡았다. 그는 "나이가 많아서 받아줄 곳도 이제 없다. 내가 가장만 아니어도 일을 그만두겠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LG트윈타워에서 근무하는 청소노동자 80여명은 지난달 말, 12월31일부로 '계약을 해지한다'는 집단해고 통보를 받았다. 트윈타워의 청소노동자들은 LG의 자회사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이하 에스앤아이)이 지수아이앤씨에 용역을 주는 하청 구조에서 촉탁직으로 계약을 이어왔다.

그러나 에스앤아이가 용역업체 변경을 이유로 지수아이앤씨와 계약을 종료했고 지수아이앤씨 소속이던 노동자들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10월 결성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분회는 사측이 용역업체 변경을 계약해지 이유로 들지만 노조결성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용역업체가 바뀌더라도 '고용승계'는 보장돼야 한다면서 12월16일부터 건물 로비에서 잠을 청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해고통보를 받은 이들 중 30여명만이 남아 사측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트윈타워에서 근무하는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이 60대 이상이다. 나이가 적지 않은 데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취업시장 문도 좁아져 다른 곳에서 새 일자리를 찾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2주 넘게 농성이 벌어지고 있는 트윈타워 로비 곳곳에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에게 해고없는 연말을' '10년간 최저임금 주면서 청소노동자 착취하다 한순간에 전원해고? LG가 책임지고 고용승계 보장하라' 등의 피켓이 곳곳에 붙어있다.

LG트윈타워 로비에 설치된 피켓 2020.12.30/뉴스1 © 뉴스1 온다예 기자

노조 측은 건물 보안요원이 조합원들의 엘리베이터 사용을 막아 화장실을 한 번 가려면 60대 노동자들이 아픈 다리를 이끌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조 간부와 조합원의 건물 출입을 통제해 소모적인 충돌을 빚고 있다고도 했다.

또 남아있는 계약기간, 파업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지수아이앤씨가 대체인력을 투입해 청소업무를 지시하며 노조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자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기분이지만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A씨는 "7년을 이곳에서 일하면서, 몸은 고됐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다녔다"며 "이제 갈곳이 더이상 없다. 죽으러 간다고 해도 이곳에서 죽고 싶다"고 말했다.

5년간 트윈타워에서 근무한 박소영 LG트윈타워분회장(65)도 "살고 싶다"고 외친다. 그는 "아파트에서 청소노동을 하던 우리 남편도 올해를 끝으로 일을 그만둔다. 한날한시에 부부가 일자리를 잃게 됐는데, 살길이 막막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박씨는 전날(30일) 농성장을 찾아온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 앞에서 절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의원들이 고용승계를 언급했을 때 나도 모르게 기대감이 생겼다. 노후와 미래가 매우 불안한 상황이지만 한줄기 희망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3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분회 조합원과 우원식·박영순·이동주·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로비에서 간담회를 갖고 있다. 2020.12.30/뉴스1 © 뉴스1 온다예 기자

1월1일이 되는 순간 계약이 해지되지만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노조는 "에스앤아이와 신규용역업체 그리고 LG에도 면담요청을 했지만 어떠한 회신이 없다"고 전했다.

에스앤아이 측은 계약해지 이유에 대해 "서비스 품질 저하 때문"이라며 노조 결성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신규 용역업체에 65세 미만 노동자에 대한 고용승계, 전환배치 검토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력 채용은 해당 업체의 고유한 경영권이므로 절대 강요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에스앤아이는 노조가 지수아이앤씨와 교섭하는 과정에서 정년 70세 연장을 요구하고 인사권이나 경영권과 관련해 수용 불가능한 항목을 요구해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지수아이앤씨는 법적 정년이 60세이지만 직원의 건강상태·업무수행 능력을 고려해 촉탁으로 전환, 65세까지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노조는 정년은 쟁점 중 하나에 불과하고 노조가 70세 정년연장을 고수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노조는 "정년문제뿐만 아니라 노조활동 불인정, 임금 및 복지, 삭감된 수당, 관리자 갑질 등이 모두 교섭쟁점이었다"라며 "11월 교섭 당시에 노조는 임금, 정년을 포함한 양보안을 제출해 해결의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규 사업장에서 업체가 기존 인원을 고용하는 것이 업계 표준 절차임에도 공개채용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한국의 원·하청 관계를 고려하면 원청이 고용승계를 주문했음에도 용역업체가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노무법인 노무사는 "고용승계는 노동 관련 법상 '의무'는 아니지만 용역업체가 변경될 때 기존 인력을 그대로 채용하는 것이 통상적인 모습"이라며 "노조가 생기면 인력을 물갈이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LG 측은 "자회사와 그 회사와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의 일이므로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LG트윈타워 로비에 설치된 현수막 2020.12.30/뉴스1 © 뉴스1 온다예 기자

hahaha828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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